나의 이야기

방랑의 강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4. 5. 9. 22:35




                방랑의 강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긴 강 앞에서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릴

                필요는 없겠다

                어차피 목을 넘길 깊이가 아니더냐

                얼룩말이 부드러운 초원을 향해 나아가듯

                악어의 입을 피해 가는 도리밖엔 없겠다

                우기에는 없던 강이 흐르고

                번성하는 나무들 싹이 자라고

                누우들의 고향처럼 시간의 흔적들이 흘러

                고성이 마주하는 이끼처럼 시간은 멈춰서 있다

                내 땅은 폐허다

                세렝게티 숫사자의 길처럼 고독하다

                내 문신은 옛사막의 신기루처럼 어둡고 쓸쓸하다

                나의 육체는 성곽에 새겨진 잡신들의 모습처럼

                남루하다

                그래도 나는 얼룩말과 누우떼들 틈에끼어

                저 긴 강을 건너 초원으로 갈 것이다

                가을이 되기전에 시간의 너울밖으로 튀쳐나갈

                것이다

                몰락한 도시의 돌기둥 옆에서 사진을 찍고

                바나나 숲을 지나다 내 고향 여우비를 만난다

                시간 여행이란 별들이 흐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우주 허공에 쓰는 낙서처럼 흉흉하다

                악어가 갈기갈기 찢어발긴 정육의 살점들은

                훗날 어느별 시간의 화석으로 남겠지

                가자 시간의 흐름을 타고 천개의 강을 건너

                그리고 거기 풀밭 언덕에 시비를 세우자

                시간이 남아 있다면…

                남아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