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명 / 김낙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5. 12. 3. 10:09
무명
어떤 시인은 담장을 허물고
구공탄을 발로 차고
불경스런 마음으로 옆집 여자를 떠올리고
하늘 공원에서 꺼이꺼이 울었다는데
나는 이도 저도 아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늘 한 자리에 있다
나설줄도 모르고
외눈박이 흉내도 못내고
붙박이로 박힌 장농처럼 한심하다
코를 자른던지
귀를 자르던지
팔다리가 없어야 빛이 난다는 세상에서
주사 바늘조차 기겁하는 배포로
그렁저렁 살아가는 세월
맘껏 흔들려서
바람불면 그 방향으로 쓸어지고
엎어지면 그 김에 일어나지도 말자는
일차선 외길 같은 행적
그러나
무명이 더 깊은 자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야 그나마 버티며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