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7. 10. 7. 11:02

 



                  미라

                   

                  남해 마을에서 늙은 화가를 만났다

                  북한산 등산길에서 비행기를 운전하는

                  남자를 만났다

                  '보라카이'에서 젊은 이태리 남자를 만났다

                  '베네시안'호텔 카지노에서는 중년의 대만

                  남자를 만났다

                  '발리'에서 만난 남자는 셋인가 넷인가 였던것

                  같다

                  오키나와에서, 세부에서, 나짱에서, 제주에서

                  그렇게 남자와 이별하며 젊은 시절을 소비했다

                  남자를 좋아하다보니 평생 같이살 배우자는

                  염두에도 없고 생각조차 안해봤다

                  그렇게 오십이 되었다

                  세상 잘난 남자는 다 만나고 돌아 다녔으니

                  후회는 없다

                  이젠 쉼터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집은 '정릉'에서 '괴산' 산막이 옛골쪽으로 옮겼다

                  젊어서부터 해온 드라마 대본 일로 가끔 시내를 나간다

                  아직도 도시에서는 나를 찾는 남자는 많다

                  남자들의 욕망은 다 쓰레기 같으니까

                  더 놀고싶지 않다

                  변방 이름없는 가난한 시인을 만나고 있다

                  이 남자를 만나는 일은 자아정화 차원이다

                  욕정도 없고 욕망도 없고 욕심도 없다

                  원두커피를 리필해 마시면서 하루종일

                  문학 얘기만 하다가 헤어진다

                  노모는 시집 못간 딸을 늘 걱정한다

                  시간 날때마다 노모를 모시고 남지나해 해변으로

                  여행을 다닌다

                  우리는 해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수평선으로

                  지는 석양과 종려나무를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나면 가난한 시인과 결혼하고

                  싶다

                  그는 나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잘난 마누라와 애들이 버젓히 살아 있으니까

                  내일 모래는 엄마와 헬기타고 용암보러 '하와이'를 갈

                  예정이다

                  엄마를 위해 기내 휠체어 서비스 요청을 잊지 않았다

                  부녀간의 장거리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듯싶다

                  "엄마 저 薇蘿예요!"ᆢ오늘은

                  자동 리모콘 대신 대문 옆 인터폰을 누른다

                   

                  어행을 다녀온후 제주 애월쯤 바닷가쪽으로

                  집을 짓고 싶다

                  거기서 가난한 시인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