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을 가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7. 10. 15. 08:01

 



                  가을을 가다

                   



                  몇해 전인가 청계사를 내려오는 밭둑길에서

                  진흙투성이로 졸졸 쫒아오던 삽살개가 갑짜기 생각나고

                  생각잖던 옛친구가 불쑥 꿈에 찾아와 멀끔히 웃고

                  비온뒤 보도블럭 가운데까지 기어나온 달팽이가

                  행여 밟힐까 걱정돼서 가던길 되돌아와

                  길섶화단 씀바귀잎에 얹어주던 일도 불현듯 생각나고

                  장마 끄트머리 골목길 이리저리 지렁이들 밟을세라

                  깡총발 뛰던 그런생각..

                  편의점에 날아든 여치를 방아깨비라며 종이컵에 모셔놓고

                  신기해하던 그에게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구나" 하던

                  뜬금없이 객적은 생각까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연관도없는 생각들이

                  아침 일터로 가는 시외버스 창가로 줄줄이 쫒아온다

                  가을인가 보다

                   

                  오늘은 함바집에 일찍 물든 이름없는 단풍잎하나 주워

                  물리는 아침 소반위에 얹어두고 왔다

                  개숫통에 넣든 책갈피에 끼든 아무 상관 없지만

                  제일 먼저 함바집에 가을을 데려다준 셈이다

                  의도없이 길가에 떨어져 물든 이파리가 예뻐서

                  무심히 줏어다 떨군 일이다

                  붕숭아꽃 지고 분꽃 피고

                  감나무가지가 부러질듯 감알들이 살찌고

                  밤나무에서 밤 알갱이들 터지는 소리가 수선스럽고

                  어느새 베개 머리에 매미소리 가고

                  귀뚜라미 울음 같이 산다

                  가을 이다

                   

                  양화대교를 건너면서

                  두물머리에서 김포까지 휘어지며 흐르는

                  새벽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버스를 타고 그 물길 곁에 바짝 붙어 나도 흐른다

                  새벽 물길은 가을 매무세와 흡사해 차고 시리다

                  잊고산 생각들이 줄줄이 깨고 일어나서

                  버스 창가로 달려드는 이른새벽

                  가을을 간다...

                   

                  "가을이"는 패션모델 연습 열중인 TV 프로그램

                  어느 여인네 이름과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2006.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