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경유지에서
낯선 경유지에서
"그의 행적은 그러했다
일본에서 며칠을 지낸후 한국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중국에 갔다가
네팔로 넘어갈 것이다
히말라야산맥의 설경과 밤하늘을
가슴에 담을 것이다"
여행은 고독해야 제맛이다
나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려니 하면
그나마 견딜만한 순간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쏟아져내려 중심에 서서
지탱하곤 했다
걷고, 물소 마차와 툭툭이를 타고,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낯선 사내의 허리를 감싸안고 달리는 산맥의 능선에는
언제나 외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은 늘 입보다 눈으로 말해왔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다 풀고 눈꼬리를 살짝 감았다 뜨곤 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줬다
그는 오로라를 찍기위해 북극에 갈 것이다
사진 전시회에서 만난 그는 주름이
서너줄은 늘었을 것이고 지구촌을
한바퀴 돌아온 궤적을 여린 발에 새겨 넣었을 것이다
언제나 사교적인 조금은 의도적인
제스추어로 나를 살포시 안을 것이며
과장되게 반가워할 그를 먼발치에서
보고 그냥 돌아올 것이다
그게 나의 마지막 배려이자 호의쯤으로 기억하게
남겨두자
시간의 흐름이 주는 치유가 유리강과
유리배의 흔적마져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시간의 벽은 늘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옛 애인이 벗어놓고간 C컵 브래지어 만큼이나
큰 망고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넣고 숙소로 돌아와
긴 행렬 탁발승의 무게로 세상의 무게를 재던 이방인의
낯선 세상은 무섭고도 남루했다
네델란드에는 세마리의 늙은 고양이가 그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롯데타워에서 내려다본 시내전경은 스모그에 가려
왠지 협소하고 그늘처럼 초라했다
오히려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야경에
그는 공감하고 감격해 했다
이종 사촌의 이국인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이질적인 감성과
움직임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고
침묵하게 했고 내내 어색하게 했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대륙의
태양들은 천천히 시간들의 흐름을 거슬러
내가 존재하는 경유지를 따라
반대로 거슬러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뜩 해야했다
아 견뎌야할 모든 고통들에게 이방인이 거쳐가는
경유지의 나를 그는 기억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건너편 하늘에서 찬란한 불꽃이
둔치 하늘로 터져 오르고 있었다
내 이모의 아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우하던 오늘은
그에게 그져 여정의 일부인 경유지
일뿐 스쳐 지나가는 바람같은 것으로 잊혀질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라를 찍기위해 별빛을 쫒아
수억년 만큼 뒤늦게 우주를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일주일ᆢ
그 일주일이 내게도 편치 않았던
이모의 주문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주지 못한채
편서풍을 타고 시간의 숲으로 날아가 버릴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계시의 흔적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