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곡리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9. 9. 9. 07:19

 


            이곡리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아침에

            타면 하루 뱃길

            <영종도>도 거치고 <대부도>도 거치고 마냥마냥 하루죙일 통통거리며 가던

            통통배 <충남호>

            객실에서 노래 한자락하면 계란밥 사준다는 말에 성인가요 유행가 뜻도 모르고

            불렀던 다섯살배기 사내아이

            배가 협해를 지나 먼바다로 나가 날이라도 궂으면 배는 이리뛰뚱 저리뛰뚱

            만경창파 일엽편주 다

            배멀미에 비몽사몽 사람들은 이리저리 다 뻗어서 떡 실신

            <청산리> 앞바다 거친 파도속 쪽배에 우리를 내려놓고 <충남호>는 종착지

            <구도>로 간다

            큰배가 풀어 놓고가는 거친 물살에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다 와서 쪽배 뒤집혀

            죽을 판국이다

            해는 저물어 포구 주막에서 바지락국에 밥한술 말아먹고 엄마는 등 포개기에 날

            꽁꽁 묶어업고 머리에는 남산만한 보따리를 이고 <사구실>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칠흙같은 밤이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다행히 달이라도 뜨면

            산능선에서 산돼지도 만나고 노루도 만나고 그나마 산적이 없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산을 두어개 넘고넘어 산길 들길을 가로질러 가고 또가면 자정무렵

            <이곡리>동구에 닿는다

            한참을 뚜드리면 삐거걱 대문이 열리고 작은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쳐 나오신다

            사랑방에서는 잠 설치시던 할배가 기침소리로 화답하고

            동네방네 인천댁 왔다고 어찌 알았는지 <이지기> 할매집으로 야밤에 우루루

            개떼처럼 몰려든다

            동네 개들은 한집 개가 울면 온동네 개가 전부 다 운다

            동네에 객이 온걸 귀신같이 알고 운다

            등잔불 아래 둘러앉은 광수처, 잿말댁, 기호 처, 떡보 댁, 무당 댁, 기실댁, 광호 처,

            등등 열명은 족히 넘는 아지매들이 한집에 모였으니 그동안의 회포를 푼다

            도회지 얘기, 시골 앞 뒷동네 소문 얘기하다가 날이 밝아 조반할 시간 즈음에 다다라서야

            아쉽지만 쪼만한 선물 하나씩을 겨드랑이에 끼고 뿔뿔이 제 집으로 흩어진다

            아침닭 울고 밥 달라고 소도 울고 아침이 온다

            할배와 나의 상은 따로 떠억 윗상이고

            그 아래로 할매와 엄마는 거의 바닥에서 쪼그려 앉아 냉이 된장국에 굴비 대가리, 파래 김,

            소금김치, 무말랭이 무침, 새우젓 반찬으로 조반식사를 한다

            할배가 구운 굴비알을 내 그릇에 얹어주면 그게 그렇게 황홀하게 맛있었다

            할배상에는 계란찜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앞 마당에 내 또래

            그 윗질의 동네 아이들이 사탕 하나라도 얻어 먹으려고 모여든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준비해준 박하사탕이나 알사탕을 들고나가 공평하게 두어개씩

            나눠준다

            애들은 신기해하며 느리게 느리게 녹여 먹는다

            귀한 도회지 껌하나 얻어 씹으면 방기둥에 붙여놓고 몇달을 씹었다

            귀한 치약은 달콤한 간식이다

            내고향 <충청남도 서산군 태안면 이곡리ㅣ구>는 차도 안들어오고 전깃불도 안들어오던

            두메산골

            교통수단은 오로지 소달구지뿐 이었다

            생선장수가 곡식과 맞바꾸고 뿌려 놓고간 고등어나 갈치는 상할까봐 염장을

            얼마나 했는지 항아리에 두고두고 일년은 먹었다

            소금소태 였지만 굽거나 졸여내면

            그래도 뒷맛이 고소하고 칼칼했다

            하도 짜서 한토막식 한마리 가지고 한식구가 다 먹었다

            지금도 그때 소금탱이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염장이 덜된 간고등어나 갈치는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못 먹는다

            젓갈도 싱거운 요즘 것들은 사다가 소금을 더 염장해야 상하지않고 오래두고 먹는다

            앞바다는 염전뻘 고랑으로 황포돛대가 들락거리고 황발이 게가 지천이고 쭈꾸미,

            갱개미 천국 이었다

            초가집 처마에서 참새잡고, 겨울밭 고랑에 싸이나콩 놓고 꿩잡아 먹고, 올개미로

            산토끼 잡던 곳

            밤부엉 울고 소쩍새 울고 말매미 울던 동구밖으로 빨간 가방을 멘

            우체부 아저씨가 잰걸음으로 간다

            빨개벗고 집앞 개빤당으로 뛰어가다 자빠지고 울고 불고하던 부랄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뒷방 늙은이로 늙어가는가

            오늘 문뜩 갑자기

            <충남호>에서 노래 한자락하고 얻어먹던 계란밥이 생각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갓지은 이밥에

            생계란 깨어놓고 양조간장 살짝붓고 들기름에 참깨부심 살짝얹어 비벼 먹던 계란밥

            <이곡리>가던 밤바다...

            충남호..

            청산리ᆢ

            이 전설의 나라는 간곳 없다

             

            싸이나 : 청산가리

            개빤당 : 갯벌

            황발이 : 빨간 앞발 하나가 엄청 큰

            뻘게

            갱개미 : 간재미

            이지기 : 할머니 살던 동네 지명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