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대의 그 섬 11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9. 9. 13. 06:45

 



                그대의 그 섬


                 

                "광저우"에서 트랜짓 한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무렵

                234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10분쯤 연착했다

                한산한 검색대를 통과하고 입국장을 빠져 나오자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듯 했다

                꿈같던 여정 89일이 마치 1년쯤 지난듯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츠코의 나고야행 탑승 예약시간은 내일 1230분이라고 했다

                다음날 공항으로 움직이기 편리한 곳으로 영등포에서 일박하기로 했다

                자정이 막 지난 심야라서 택시로 이동 했다

                그녀가 귀국할때면 가끔 이용하던

                롯데백화점 건너편 자그만한 호텔 <INN>에 여장을 풀었다

                바로 30여미터 인근에 공항가는 리무진 정류장이 있어서

                공항으로 이동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짐을 들여놓고 속이 헛헛 했는지 그녀가 이별주를 해야 한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근처 포장마차를 찾아 들어갔다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도 손님이 두세팀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들의 말투에는 애환과 술이 함께 젖어 있었다

                우리는 구석편으로 자리를 잡고 어묵우동과 고사리감투가 섞인

                순대 한접시를 시켰다

                소주는 순도높은 빨간딱지를 시켰다

                어묵우동은 꽃게를 넣어 밤새 끓여서 국물이 찐하고 깊었다

                우선 뜨거운 우동으로 허기진 속을 풀었다

                소주잔을 두손으로 받치며 공손히 따라주는 그녀의 술잔을 받았다

                나도 두손으로 그녀의 잔을 채웠다

                그녀가 물기어린 눈으로 자기잔을 쳐다보며 공허하게 말을 이어갔다

                왜 나를 바라보지 않는지 그 의미는 알수가 없었다

                "샘ᆢ고마웠어요"

                "저를 위해 기꺼이 동행해 주신 것도 고맙고

                저를 믿어주신 것도 고맙고

                저를 안아주신 것도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젖은듯 흔들리고 있었다

                "저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오늘을 절대 잊지못할 겁니다

                감사했습니다ᆢ"

                대답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이 여자를 어떻게 슬프지않게 떠나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웃을수 있다면 좋겠다

                지우려해도 기억 나겠지

                운명처럼 다가와 운명처럼 헤어지는 일이 힘이 든다는 것을

                가슴은 알고 있겠지

                감출수없는 그리움의 끝이 이리 허무하고 애절하다는 것을

                "아치코ᆢ잊지말고 연락해요"

                "서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위로가 될 말을 기어이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술잔에 눈물을 떨구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차마 눈물을 보일수는 없었다

                가슴이 저리고 아렸다

                우리는 그 동안의 여정속에서 기억나는 풍경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못 먹는 술을 각 일병씩을 했다

                그녀는 양이 좀 모자라는 듯도 했지만 내가 취한듯 싶자 자신이

                애써 자제하는듯 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욕실 부스에서 함께 샤워를 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나의 몸 구석구석을 비누거품으로 정성스럽게

                씻어 주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어쩌면 비누 거품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뜨거운 몸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나는 가슴에 묻은 그녀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흔들리지않게 그녀의 머리를 꼭 감싸 안았다

                이렇게 섧게 우는 그녀의 심경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않기로 했다

                가슴에서 그녀의 얼굴을 꺼내 들고 젖은 눈을 바라봤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도리질을 치며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정들어 헤어지는 일은 이처럼 어렵구나 생각했다

                잠을 설친 늦은 아침 창밖으로는 속절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갈 길은 먼데 사공없는 거룻배같은 인생이여

                우리는 떠돌고 떠돌아 어느 포구에 닻을 내릴수 있을까

                우린 말없는 뱃사공처럼 하염없이 짐을 만지고 만지며 짐을 꾸렸다

                헤어져야할 시간이 온다

                편의점에서 비닐 우산 두개를 샀다

                그녀는 캐리어를 양손으로 끌자니

                우산을 쓸수 없었다

                내가 왼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오른손으로그녀의 머리위에

                우산을 받치며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산 하나는 소용도 없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녀가 말했다

                "샘ᆢ이제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나는 잠시후 도착하는 공항버스 탈께요"

                "왜요? 버스 타는거 보고 갈께요"

                "아녜요ᆢ 오히려 그러는게 더 힘들것 같아요"

                "떠나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래요"

                그녀의 얼굴이 울컥 울렁이는듯 했다

                그래 그게 편하다면 들어주자ᆢ

                "알았어요 그래요 잘가요ᆢ보이스 톡 해요"

                나는 돌아섰다

                비오는 영등포 역사쪽이 안개낀듯 뿌옇게 흐려졌다

                터벅터벅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줄 알면서도 절대 돌아보지 않고 줄곳 걸어갔다

                돌아보면 발이 장승처럼 묶일것 같았다

                전동차 안에서 어두운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낯설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한거지...

                영등포에서 그렇게 헤어진후 기다렸지만

                그녀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독한 사람이었다

                "성ᆢ연수".....

                 

                내가 사는 일에

                이유가 없어진지는 오래 됐다

                성공이랄것도 없는 세월뒤엔

                회한이 쓸쓸히 자리잡고

                떨어진 동백 꽃잎이나 그러모아

                아이처럼 꽃집을 지을 나이라니

                무슨 할말이 남았겠는가

                한서린 마차가 덜컹거리며 길 떠나는 동구밖에는 복숭아꽃 피고

                누군가 "봄이예요" 하는 속삭임에

                뒤돌아보니

                아지랑이가 살랑살랑 걸어오네

                내가 이쯤 살아낸 것도 축복이려니

                이젠

                잊어가는 일이 내 소임이려니 한다

                 

                사람은 늘 외로운 존재니까

                외로워 하지

                허기지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강가로 나가 함께 흘러간다

                흐르다 어느 포구에 닿으면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 지나가는 거니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니까

                사랑하는 계절엔 눈도오고 비도오고 천둥도 치는 거니까

                그렇게 잊혀져가는 거니까

                 

                나도 아프도록 흘러가서

                슬픈 강이 되련다

                안개낀 새벽에 목놓아 울던

                양수리 강가에서

                젊음을 소진하던 한 시절이

                그렇게 흘러가서 어느 포구에

                닻을 내렸을까

                강은 말이 없는데

                강물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독주에 취해 신음하던

                강의 노래는 아직도 귓전을

                때리는데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