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당신이라는 섬 12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9. 9. 15. 11:19

 



                당신이라는 섬


                 

                시완은 귀국한 다음날 늦은 저녁

                찻잔을 앞에두고 아내에게 지난 여러날의 여정을 거짓없이

                조곤조곤 실토했다

                어쩐일인지 떨리거나 죄의식 같은건 추호도 없었다

                아내는 역시 흔들림없이 담담하게 상황을 들었다

                "그래서 어떻하자는 건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구?"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

                이틀후 아내는 아무말없이 조용히 이혼절차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조정기간 중이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헤어지는 일만 남는다

                아내도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걸 내가 알고있었으니

                절차상에 큰 무리는 없을성 싶었다

                재산상에 다툼도 없다

                옛날부터 우리는 독립채산제 형태의 살림이었으니까

                아내의 재산은 나보다 10배정도

                될테니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늦은저녁 한통의 전화 받았다

                뉴욕에서 온 보이스톡 국제전화 였는데

                '수연'이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수연'이라면 173쪽 메모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이 아닌가

                이야기인즉슨 이러했다

                이번 휴가에는 꼭 한국에 들러 선생님 찾아 뵈었으면 해서

                전화를 드렸다는 것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나고야에 살던 '아츠코'의 딸라고 했다

                나를 아냐고 했더니 학부시절

                방학때 나고야 집을 들리면 엄마가 존경하는 작가님이라고

                그림 자료랑 시집을 보여주며 입이 달토록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엄마가 갑자기 어젯밤 꿈에 나타났다는

                얘기를 했다

                갑자기 꿈에 나타났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

                수연의 엄마 '아츠코'는 이태전 여름에 빗길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저녁 퇴근길에 나고야 외곽 고속도로 빗길에서 차량이 미끌어져

                가드레일을 뚫어나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전복된 혼다 SUV 차량은 여러차례 뒹굴러서 완파됐고

                고속도로 순찰대와 구급 엠블런스가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엄마의 숨은 멎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전복된 차량의 속도 게이지가 140Km에 멈춰 있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사에서 경찰은 자살쪽에 무게를 두는듯 했지만

                과속외에는 정황상 자살을 뒷받침 할만한 근거가 추가로

                나오질 않아서 결국 사고사로 마무리 됐다고 했다

                측근들의 말로는 집으로 가는 방향과는 조금 다른 곳인데 왜

                그 시각 빗길에 고속도로를 타셨는지 알수가 없다고들 했어요

                그런데 어젯밤 꿈속에서 돌아가신 엄마가 제게 현몽처럼 나타나

                선생님을 꼭 찾아뵈라고 하셨어요

                꿈이 현실같아서 아직도 너무 생생하고 혼란스러워요

                선생님을 찾는일은 의외로 수월했어요

                Daum에서 선생님을 검색하니까 블러그랑, 전화번호랑, 주소,

                메일등 여러가지 신상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않게 알아낼수 있었구요

                어느해 방학때 엄마를 보러 집에 갔는데 벽에걸린 선생님

                그림이랑 시집을 보여 주셨어요

                샘의 두번째 시집을 건네며 읽으라고 주셔서 지금도 제가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샘은 우리 엄마와 어떤 사이 셨어요?

                 

                여행에서 돌아온지 이제 한달이 채 안됐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않되는 상황이란 말인가ᆢ

                아츠코가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쌍둥이?

                순간 벼락이 지나가듯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마치 전기에 감전된듯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뜨거운 전율이 지나갔다

                "그런데 수연씨 혹시 쪽지나 메모같은 것을 도서관 열람실 서책

                갈피에 넣어두신 적이 있나요"

                "네에?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ᆢ"

                "제 집에서는 전공서적을 읽으며 간혹 제 책에 메모를 해두기는

                하는데 그런걸 말하시는 건가요?"

                "아니 아닙니다 그럴리가 없겠어요 제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잠깐 했네요"

                "그리고 거리상으로 뉴욕에서 서울은 너무 먼 거리네요"

                "? 무슨 말씀이신지ᆢ"

                "아뇨ᆢ제가 괜한 착각으로 엉뚱한걸 물었어요"

                 

                수연은 유학중 뉴욕대에서 항공우주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나서 바로 NASA

                스카웃된 몇 안되는 엘리트 여성 과학자중 하나 였다

                치열한 경쟁속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사회에서 혼열 동양인으로서

                박사 논문 통과에 온힘을 쏟다보니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녀는 아직 결혼을 못한 올드미스 였다

                아버지를 닮아 유럽계 혼열아 였지만 피부는 백인이 아니고

                황색인종에 가까웠다

                유창한 한국말은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자란 탓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어휘와 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한달전 내가 89일 함께 동행한 '아츠코'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이태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수연의 엄마 아츠코는 또

                누구란 말인가

                이 상황을 이 여자 수연에게 말하면 그도 이상황을 믿을수 있을까

                도저히 말로 이해시킬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순간 직감하고 있었다

                '아츠코'는 동명이인의 다른사람 이었는가 아니면 유령인가

                의문의 꼬리는 점점 깊은 수렁으로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럼 또 누구인가......

                 

                어떤 이름 불러보면

                가슴 저르르 할때가 있다

                가을 아니더라도 가을같은 이름

                꽃지고 낙엽지면 곧 눈 내릴텐데

                그 이름 식지 않을까 고히 품에 안는다

                언제쯤 그 이름 놓을수 있을까

                동백꽃처럼 떨어지면 서러울까 두려워

                동박새 우는 산사

                예불소리 깊어가는데

                요사체 은은한 불빛 가슴 에이네

                시인도 잠못 이뤄 뒤척이는 밤

                처사의 기침 소리에 밤은 깊어가고

                불러봐도 대답없는 이름 여기 또 있네

                목울대로 넘기면 꽃이 되는 이름

                가만 가만 되뇌어 불러봐도

                툭ᆢ하니 능소화 꽃잎 떨구는 소리에

                ~ 깊어가는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