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몰래한 연애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9. 11. 16. 09:50
몰래한 연애
간밤에 동숙했던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질 않는다
단칸방에서 숨죽이며 열열한 사랑을 나눈 그네의 얼굴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
몸은 기억했다 그가 누구였는지를
영자의 몸이었음을 몸은 어떻게 알아 냈을까
라벤다 향을 지독히 싫어하는 그녀는 방역차의 배기가스나
맨소레담 냄새를 좋아했다
시골 버스종점 역부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딸부잣집 영자네
버스 종점에서 내뿜던 배기가스는 불완전 연소된
휘발류 냄새였다
그 냄새를 쫒아다니던 진호는 결국 미군부대 방역차에 치어
오른발을 잃고 평생을 외다리로 살았다
어젯밤 왜 하필 뜬금없는 영자가 내 단칸방에 찾아와 나와 잤을까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영자의 몸을 내몸은 어떻게 기억할수
있었을까
얼굴을 떠올리려해도 얼굴은 떠오르지않고 그 아래로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고맙다
지난밤에 내게로 와줘서 고마웠다
꿈은 가끔 기억도 못할 사람을 뜬금없이 데려와서 동침을 시킨다
내가 허기진 것을 기막히게 알아채고 누군가를 데려온다
저 옛날 꽃동산을 뛰어다니며 놀던 두메산골 영자야,
조만간 네 꿈속으로 가서
내 신세 한번 진하게 갚으마
꿈속에 사랑은 깨고나면 허무하지만 무한해서 좋다
무참해서 고맙다
영자야, 어디 아프지말고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