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개미지옥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4. 10. 10:05


 




              개미지옥


               

              영숙은 상가옆 자매 순대국집 주방에서 해장국과 순대국을 끓인다

              펄펄끓는 한여름에도 한평반되는 주방에는 가스불만 여섯개를

              끼고 일한다

              식사 시간에는 손님들이 몰려서 여섯구의 불구멍도 모자랄 판이다

              이렇게 화마와 씨름하며 버는 돈으로 세식구가 근근히 살아간다

              남편, 아들, 영숙이 자신

               

              친구 정혜는 일찍 이혼하고 서울 강남 에서 혼자 산다

              신혼때 잠원동으로 이사 가더니

              30년만에 열곱이 넘는 시세 차액을 거둔 아파트만 세채를 갖고있다

              그때 서울로 함께 이사하자고 몇일을 보챘는데 내가 안간다고 했다

              고향 동네를 뜨기가 싫었었다

              그런 인천 내 집은 삼십년째 한번도 요동도 없이 잠잠한채 오른적이 없다

              남편이 일자리를 일찍 그만두고 자신이 식당 주방일을 한지도

              벌써 15년이 됐다

              놀기 시작한 남편은 영영 다시 일을하려 하지 않았다

              영숙이가 일을하지 않으면 세식구는 꼼짝없이 굶어죽을 상황이다

               

              소문에 정혜가 민국당으로 공천을 받아 OO 을지구 국회위원으로

              출마를 한단다

              오늘 정말 식당 홀 TV에 나왔다 출마자로 신상이 소개됐다

              공식 재산만 65억으로 공개됐다

              당선될지 안될지는 개표를 해 봐야겠지만

              지역, 정당 활동을 꾸준히 해와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고교 동창생, 대학 동문인 단짝친구 정혜가 서울로 가서

              마당발로 뛰며 기반을 닦더니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먹고사느라 주방에서 부엌 일만 십수년 하고 있는데 말이다

              학교때 성적은 내가 훨씬 좋았었는데 머리는 잘사는데 그닥

              볼 일이 없는 모양이다

              엊그제 유명 호텔부페에서 저녁 먹자고 연락이 왔는데

              피곤하다며 거절해 버렸다

              솔직히 쪽팔려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마땅히 입고나갈 옷조차도 변변히 없어서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갈라놨다

              그때 정혜 따라서 서울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판단을 잘못했었다

               

              한여름 식당 홀에는 에어콘 바람으로 시원하지만 주방은

              불구멍 여섯개에서 국밥들이 끓고있으니 죽을 맛이다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를 정도로 찜통이다

              전신을 땀이 비오듯 적신다

              여기가 바로 마다카르카스 정글의 개미 지옥이 아닌가

              정혜야! 국회위원 당선돼서 나좀 국회의사당 회원식당에

              취직좀 시켜다오

              앞으로는 하잖대로 네 말 무조건 잘 들을께

              영숙이와 정혜는 둘도없는 오랜 절친이지만 직접 대면하기는 쉽지않다

              신분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순대 냄새도 늘 몸에 배어 있어서 지척에서 보기는 좀 꺼리끼고 곤란하다

              잊을만하면 폰 전화로 서로의 안부 정도를 묻곤 한다

              정혜는 평생 설거지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을테고

              나만 왼종일 설거지통에서 빠져서 살고있는것 같아서 속상하다

              개미지옥 같은 주방에서 불개미처럼 사는것 같아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