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리4
홍유리 4
헤어진 아이 아빠가 만나자고 한다
딸 문제라니까 만나기는 해야겠는데 만나볼 자신이 없다
런던 지사로 발령났다며 딸애도 같이 데려가 그곳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한다
지금 처지로는 애한테는 그편이 훨씬 잘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헤어질때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양육권을 가져와서 딸과함께 살게됐는데 이제와서 포기한다는게 우선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또 딸애가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할지도 의문이고 새엄마와 같이 잘 살지도 알수가 없는 일이니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쉽게 서질 않는다
친구 수연과 연수에게 상의했더니 보내지 말라고 역정들을 낸다
그집으로 보내면 다시 데려오기 힘들꺼라는 이유다
지난번 음성 태준 샘께 들렀을때 자문을 받고 싶었는데 차마 입도 떼지못하고 와 버렸다
샘이라면 뭐라 하셨을까ᆢ
딸을 설득하고 장래를 생각해 아빠따라 보내기로 했다
나와 있어봐야 궁핍한 생활 뿐이고 처지가 나아질 형편도 아니니
차라리 좋은 환경에서 질좋은 교육을 받는것이 딸애의 미래를 위해 좋은 조건이라는 판단을 해서 였다
가을학기에 맞춰 보내기로 했다
이제부터 외로움과의 싸움이 시작되리라 벌써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는 혼자 외톨이가 되고만다는 사실이 서글퍼 진다
GS 슈퍼는 저녁 시간에 세일을 시작한다
8시 쯤이면 각종 채소와 생선, 포장 육고기를 30~40%쯤 할인해서 팔기 시작한다
그때쯤 나가서 반찬거리를 장만하면 비용을 꽤 절약할수 있다
슈퍼에서 늘 그 시간때에 마주치는 중년의 사내가 있다
고의적인 스토커인지 아니면 내가 과민한건지 늘 그 시간때에 마주치게 된다
어느때는 먼 발치에서 주시하는 느낌이 들때도 있고해서 괜히 부담스러운 사내다
꽤 오래시간 동안 보다보니 결국 이남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무섭기도하고 스토커같아 두렵기도해서 그 시간대 쇼핑을 피하기로 했다
한시간쯤 늦추어 9시쯤에 슈퍼를 들렀다
둘러보니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쉬며 장보기를 마치고 정문을 나서려는데 후문쪽에서 그 남자가 서서 내 쪽을 바라보다 내 눈과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다른쪽으로 돌리는듯 보였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역시 스토커가 맞는듯 싶었다
왜 나를 남몰래 주시하는 것일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혼자사는 것도 알고 시작한 스토킹 이겠지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와 방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수연과 연수에게 상의하고 도움을 청해야 겠다
410호 남자는 혼자 사는 모양이다
그 남자외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어느날은 장바구니 가득 장을 봐 오기도하고
어느날은 며칠씩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돌아온다
여행을 좋아하는지 캐리어를 들고 나갈적이 꽤 많다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위아래층 살아도 반상회가 없어진 후로 이웃끼리 왕래가 전혀 없어서 강도나 간첩이 살아도 모를께다
이 남자가 슈퍼에서 나를 관찰하는 사람 이다
하루는 날잡아 장바구니를 들고 슈퍼 정문앞에서 그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보자마자 앞을 가로막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왜 자꾸 제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시는거죠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 하겠어요
그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무척이나 당황해 했다
처음에는 반색을 하며 절대 그런적 없다고 남자는 말했다
그럼 경찰 입회하에 매장 감시카메라 한번 확인해 볼까요
그러자 그제서야 바른 말을 했다
그쪽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눈에 띄이지않게 조심 하겠습니다
그렇게는 안되구요
그쪽 시선이 너무 부담되고 기분이 안좋으니 앞으로 안 보였으면 좋겠네요
남자는 낭패스런 표정으로 그러마하며 거듭 사과하며 머리숙여 사과를 했다
410호는 일주일후 어디론가 이사갔다
그 남자가 이사간후 왠지 너무했단 생각이 들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
파리행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났고 같은 비행기를 타게됐다
그때부터 운명은 짖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떠나지 못한지가 5년이 훨씬 넘었다
파리를 가기위해 아무도 모르게 야간업소 일을 했다
노래방 일은 마음만 내려놓으면 고소득을 올릴수있는 일이었다
압O정동 디럭스룸 도우미 시간급은 7만원, 야간 5시간정도 일하면 일일 35만원의 수입이 들어왔다
손님들의 손길이 거칠기도 했지만
상대의 기분 안 상하게 영리하게 힘겹게 참아내야 했다
2차는 거금의 유혹이 있었지만 애써 피하기로 했다
두달 열심히 일한 댓가는 천만원 정도가 됐다
파리를 가고 말테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이젤을 펴놓고 여행스케치를 해 보리라 마음을 궂게 먹었다
친구들 몰래 나홀로 여행이 되리라
업소를 그만둔 다음날 종일 인터넷으로 항공편과 호텔 예약을 끝냈다
드디어 다음주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파리행 오전 출국이다
이제부턴 아무 계획도 없이
그렇게 살기로 한다
이젠 그리워 않기로 했다
다 부질 없는 생각이다
미운사람,정든사람,그리운사람,
용서못할사람, 그런것도 없다
연인에서 적으로 원수로 살 일도 없다
다 보내기로 한다
기다리는 일도 없기로 한다
남는건 늘 혼자일뿐
미안해 할일도 없다
나는 시간의 여행자
누굴 다시 만날 일도 없다
사랑하는 일이 갚지못할 죄 인줄을
알고난 후에
세상에 태어난 죄처럼 속죄한다
홀로 가는 길
이별은 늘 먼저 오는것
눈물 바다를 건너 너를 보내고 돌아 오는 길은 망망한 시간의 저편
잠들면 낮은 빗소리
찰방거리는 파문의 시간 그 건반위로 슬픈 세레나데
어깨위로 나부끼는 시간의 편린
그 비늘들의 울음을 듣네
뒤척이는 내 영혼의 발걸음은
해저문 언덕위 십자가에 맴도네
아무 생각도 없이
어디론가 떠돌며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