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만장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8. 5. 09:46
만장
까마귀 울고 서리 내린 가파른 언덕길로
해가 지고 떠서 울고 웃던 한 生이 간다
펄럭이다 얼어붙은 겨울 논배미 허수아비 소매의
호우시절 기억도 뒤로하고
어르신 곰방대 두드리던 사랑방 퇴침엔 반들거리던
윤기마저 빛을 잃었다
수국이 져서 저 걸레 같은 빛의 바람처럼
한 생애가 이토록 쇠락한다
무서리는 참혹하게도
만장마저 얼어붙여 길을 잡고 우는구나
겨울 벌판은 숨을 죽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상여를 몰고 간다
어차피 속절없이 흔들리는 저 깃발의 나부낌처럼
그렇게 살다 간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까마귀는 뭣하러 자꾸 깃발 꼭대기 끝에 앉아 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먼저 간 님의 노래인가
죽음은 늘 곁에서 깃발처럼 나부끼지만
내일을 모른 채 살아가는 오늘
펄럭이는 만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 비릿한 사내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