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老詩人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8. 8. 15:52


老詩人

아침에 일어나 뒤뜰에 나가보니 봉선화며 채송화가
한껏 피었다
다알리아도 무르익어 농염하고 칸나도 핏빛으로 붉다
장독대 위로 잠자리 떼가 자유롭게 노는데 때마춰 뒷산
뻐꾸기도 운다
긴 장마 끝 모처럼 개인 날 신기슭 물소리가 우렁차다

오늘은 누구의 시를 쓸까
봉선화를 쓸까
칸나 붉은 열정을 써 볼까
잊혀진 애인이라도 불러 세울까

사립 문밖 냇가를 걷는다
호박 넝쿨 사이로 매끄러운 애호박이 귀엽다
가시넝쿨 사이로 보랏빛 엉겅퀴 꽃도 신비롭다

몇 번을 고사했지만 또
출판사에서 시집 발간 제의가 왔다
세간에 내줄만한 시가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내 삶의 초라한 궤적이라 남들에게 보여줄
용기가 없다고 둘러 댔다
변방에서 숨어 사는 글쟁이 주제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모습을 드러내나 싶다

이제 들어가 골방 서재에 앉아야겠다
감사한 오늘도 행복한 詩를
지어야겠다
아침저녁으로 밥 짓듯,
그 밥을 먹듯 지어야겠다

멀리 세수한 듯 보이는 청록빛 산야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