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모모山의 전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9. 28. 21:35
대호는 유도부 유단자 였다
유도는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골격과 힘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어느 날 도토리 만한 강철이가 날보고 어디를 같이 좀 가자고 했다
학교 뒤 '모모산'이었다
그곳에는 대호와 유도반 덩어리 친구 하나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이는 내게 가방을 맡겨놓고 교복 웃통을 벗어 건넸다
다윗과 골리앗의 한판 싸움이었다
강철이는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대호의 손아귀를 귀신같이 피해 다녔다
유도의 기술이란 잡지 못하면 써먹을 수 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싸움꾼 강철은 허점이 생길 때마다 그 틈을 비집고 튀어올라 대호의 아구창을 번갈아가며 가격하고 빠져나왔다
현란한 발차기와 카운터 펀치는 영화에서 보는 그런 예술적 경지였다
결국 강철은 한 대도 맞지 않았고
십여분 만에 대호는 수십대의 훅과 리킥을 맞고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따라온 유도부 친구와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대호는 유도부 덩치 등에 업혀 떠났고
강철이와 나는 산에서 내려와 학교 옆 호떡집에서 금세 구워 사탕 물이 뚝뚝 떨어지는 꿀호떡을 맛있게 사 먹었다
승리를 자축하는 꿀 파티였다
동물적 감각을 지닌 싸움꾼을 그때 나는 처음 봤다
그 큰 떡대를 잠재우고 나서 강철이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대호가 창피해서 학교를 못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내다운 녀석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동창회에서 만나면 우린 서로 반갑게 악수하고 같이 어울려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물론 그 싸움의 전설은 나, 강철이, 대호, 병식이 넷만 아는 비밀로 아직까지도 지켜져 온다
그때 당시 강철이의 키는 151센티에 중량 53킬로 그램이고
대호의 키는 179센티에 중량이 86 킬로그램쯤 이었다
40대에 강철이가 한때 일본 '오사카'에서 술집을 운영하면서 살았는데 그 동네 야쿠자들도 강철이 깡에 눌려 감히 건들지 못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고전영화 '다윗과 고리앗'을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모모산에서 벌어졌던 강철과 대호의 한판 싸움이 떠 오른다
싸움꾼은 배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는 것을
그때 그 현장에서 알았다
타고난 싸움꾼은 아무도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시절 오사카에서 만나 재혼한 스무 살 아래인 마누라 '미츠코'에겐 강철이가 옴짝달싹도 못하고 꽁지를 내린다고 했다
그 이유는 19금이라 생략한다
항우장사도 여자의 秘器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법이다
그다음 해 '모모산'에서
싸움에 '싸'字도 모르는 나와 병달이가 한판 붙었는데
병달이가 잘못 맞아 쌍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5분 만에 싸움이 싱겁게 끝나버렸다
내 코 묻은 손수건으로 병달이 코를 틀어막고 어깨동무로 산을 내려왔다
그다음부터 병달이는 나한테 '딱부리'라고 다시는 놀지지 못했다('딱부리'는 눈이 크다고 수학 선생님이 붙여준 내 별명이다)
그때는 우리 외에 '모모산'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승패는 영원히 둘만의 비밀로 남아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대호는 건축업으로 큰 부자가 됐고 강철이는 청담동에서 빌딩 주차관리를 한다
그리고 나한테 코피 터졌던 병달이는 건설회사 사장이 됐고,
나는 변방의 이름 없는 시인, 화가가 되어있다
평생 세 번을 싸웠는데 전적은 3전 3승이다
상대가 전투 태세를 갖추기 전에 갑짜기 급습 선방
싸움의 기술 중 요행히 그 선방이 주요했다
# '모모'는 일본말로 '복숭아'를 뜻한다. '모모산'은 일제시대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붙여진 '도원동'에 위치해 있는
조그마한 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