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래된 가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10. 27. 09:43

 

 

오래된 가을

나는 남자가 아니다
나이 든 사내다
종착역으로 가는 기차다
임무를 완수하고 긴 휴식기로 들어섰을 때 밤은 길기만 하고

새벽이 오지 않았다
과부가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허벅지를 찌를 때가

그런 가을이었다
소매자락을 푸른 핏빛으로 물들이고

밤새 바람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남자가 아닌 사내는 무참했다
포구에 기댄 배가 다시 출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내는 진

작 알아차렸다 슬퍼할 순 없다
한평생 고해를 떠돈 이름 없는 종이배처럼 가을 녘
저무는 들판의 허수아비 옷자락은 남루했다
사내가 퇴장하는 저녁
노을이 붉다
수없이 오고 간 세월
가을은 이리 무참할 뿐이다
"툭"하며 정수리로 떨어지는 낙엽이

죽비 소리를 닮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