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2. 14. 10:56

 

 

허 공

 


어느 날 문뜩
그대 생각 나는 날
웃고 사랑하던 일이 떠오르고
이젠 오지 못할 길을 떠나갑니다
들불 무성히 타 오르던 날
낙타 등처럼 따스한
서로의 등에 마음을 기대고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 가고 없습니다

가슴이 오그라져
살 수 없는 날에는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잘 있니ᆢ밥은 잘 먹고ᆢ잠도 잘 자니ᆢ행복하니ᆢ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 합니다
그저 허공입니다

언덕배기에 앉아서
먼 해역을 바라봅니다
작은 순간에도 그대가 생각나는 날에는
바람이 되어 갑니다
저 먼바다를 건너가는 바다새처럼
훨훨 날아서 돌아선 그대의 손을 잡습니다
차가운 허공입니다

어느 날 문뜩
그대가 생각 나는 날에는
퉷마루에 앉아 허공 위에
노란 나비 한 마리를 그립니다

길은 외길
연락선도 없는 작은 섬
그대 없는 집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