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류장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2. 20. 09:41

 

 

 

정류장

 


문뜩 생각나는 사람
왈칵 목울대를 타고 오르는 그리움
아보카도 씨를 발아하듯 기다리는 시간 뒤로
세월의 정류장이 보인다
홀로 서 있는 사람을 본다
차가 섰다가 떠나도 서 있는 사람
마치 장승처럼 몸을 박고 있는 사람

빈 잔에 술을 채울 때 나는 소리처럼
청아한 말투가 생각나는 사람
낙타의 눈처럼 마른 눈물로 먼 사막을 바라보던 사람
빗소리만 들려도
피아노 건반처럼 흑백의 소리로 춤추던 그날의 사람

인연의 줄기가 다해
끊긴 실타래처럼 너덜거릴 때
구겨진 가슴을 숯 다리미로 펴듯 안아준 사람
기억이 소진해 말라갈 때 정류장에 서있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나의 정류장, 안식의 날이여

사람이 사람을 그리운 날처럼 행복한 날이 있을까
기억이 기억을 묻고
거미의 집처럼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生
거기 정류장에 아직도
그 사람이 장승처럼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