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3. 12. 23:26
사막에 내리는 눈
내가 너를 알았을 때
가슴이 뱃고동처럼 떨렸다
먼바다로 물살을 헤치고 나아갈 때 나는 알았다
너는 배고 나는 바다였다는 걸
그렇게 우린 바다를 함께 건넜다
눈 속에 파묻히던 밤
세상은 하나였고
하늘이 하나였고
땅이 하나였고
우리가 하나였다
그날의 눈은 먼 세상 같았다
그렇게 새 날이 밝았다
낙타의 등은 따듯했다
코끼리의 등은 사막 같았고
망고 원숭이의 머리는 부드러웠다
우리가 등을 마주대고 웃을 때
먼바다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세상이 아름다웠다
세월이 갔다
초원은 사막이 됐고
사막에는 바람도 불지 않는다
촛불은 흔들리지 않았고
바다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숭이 언덕에는 노을이 짙게 깔렸다
백 년은 그렇게 쉽게 갔다
삿포로의 눈은 내리지 않는다
몽골의 밤은 암흑이다
페낭 앞바다 암초에 걸린 배는 비를 맞고 있다
부낏멜라와띠 언덕에서 원숭이와 놀던
너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존재의 무상함이 깊어졌다
빛이 머물다간 상실
그리고 나도
그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