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상실의 시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3. 27. 04:21

 

 



상실의 시간

 


늙은 식탁에 앉아 마시는
차 한잔의 수명처럼
찰나일지도 모르는 생을 구차하게 늘려본다
앞에 있던 당신도 사라지고
먼 그대마저 떠나 버리면 소멸의 시간이다
준비 없이 찾아오는 이별의 순간들을 겪다 보면
세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간이역에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지루함처럼
존재의 상실은 무채색이다

창밖을 보면 늘 노을이 진다
그 많던 벌새들도 보이지 않고
맨 발로 계단을 오르면 비루한 삶의 바닥들이 삐걱거리고
유리창을 닦으며 비치는 지친 자의 모습은 구겨진 신문지 같다
몸을 부딪히며 사는 사람들의
관종의 의미는 그렇다
외롭다는 소리 없는 절규

달걀 프라이는 꼭 두 개를 한다
하나면 꼭 나를 닮은 것 같아서
아무 곳에 전화를 해서
상대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죄송하다며 끊는다
누군가와의 십 초짜리 대화로
위로를 받는다
상실은 너무 쌓아두고 가진 것이 많아서 오는 것
욕망에서 기인된
내 업보임을 자인한다

나의 인형
나의 종달새
나의 피에로
오늘도 나를 만나러 상실의 거리로 역마처럼 달려 나간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자아
존재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