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낮달/김낙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9. 2. 09:27

 

 

낮달

 


당신의 기억이 끊어지고 나서부터 늙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발길이 끊어지면 인연도 다하는 것 이겠지요
낮달을 쳐다보면서 나를 닮았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봅니다
낮 빛에 가려 빛나지 못하는 하얀 달
마음 둘 곳 모르는 어떤 날 입니다

그리움도 지치면 제 몸을 밀어 냅니다
그 자리엔 흔적도 남지 않지요
지친 영혼들이 모여 제 살들을 비비며 사는 세상엔 모진 비바람만 붑니다
따듯한 몸 그리움이 사무치는 나날 입니다

항구에는 늘 지친 배들이
뉘엿뉘엿 들락 거립니다
괭이 갈매기가 노을에 기대어 울어댑니다
바다 끝에서 오는 파도의 몸으로 쓰다듬는 살 냄새가 짜디 짭니다
그리운 사람의 기억처럼 말이죠

살아내서 남는 것들의 향연은 초라합니다
전쟁 같은 삶이 아니었어도
살아냈다는 역사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순한 생을 살아서 다행입니다
아무리 비루했던 삶이라도
훗날 문신처럼 희미해진 발자취가 낮달이 되어 뜨지 않을는지요
나는 달빛처럼 먼 곳으로 가기를 원 합니다

낮달은 빈 허공을 채우지 못하고 마음 밖으로 떠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내내 서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