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울 시대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9. 9. 08:09


우울시대

 


병원 건강검진 정신건강 설문지에
"죽고 싶을 때가 있다"에 동그라미 쳤다
의사는 분명히 우울증 초기라고 진단할 것이다
그리고 약 처방도 하겠지
사람이 가끔 우울할 때도 있기 마련인데
우울증이라고 판단하는 건 섣부른 오판이다

나는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곱게 죽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복어 매운탕
코카인, 에테르, 프로포폴
번개탄
내 의지대로 목숨을 끊을 자유가 없다는 게 때론 곤혹스럽다
의료 만능시대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을 의학의 힘에 의지해

연명한다는 건 사회적 손실이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의식 없이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건강한 젊은이들만 잘 살면 된다

나는 우울증 환자로 낙인 찍혔다
이 시대에 우울하지 않은 자가 또 어디 있는가
의사도 찌든 얼굴에 한참 우울해 보이드만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컨트롤하고 케어하는 방법도 잘 안다
환한 날도 있고 우울한 날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것이 사는 맛 아닌가

나보다 의사가 더 심각하다
나는 속으로 비웃는다
나도 그 정도는 진료하겠다
요즘은 의료 장비가 의사 일을 모두 한다
로봇 장비들은 첨단이다
의사는 그저 그 장비들을 운영하는 운전자 일 뿐이다

나는 지금 우울하지 않다
그저 깊은 생각을 할 뿐이다
어떻게 죽는 게 현명한 길인가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