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통증의 미학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11. 19. 13:02

 

 


통증의 미학

 


갑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청상과부로 평생 농사만 짓고 살다가 허리 수술받고 밭에 영 못 나가더니 시름시름 곡기를 끊고 죽었다
문고리를 안으로 굳게 걸어 잠근채

허리가 기억자인데도
깨밭이며 고구마밭, 수수밭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밤이면 신음소리를 내며 잔다
평생 풀 뽑는 밭농사를 짓다 보니 기억자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

추수철이면 서울 사는 큰아들 작은 아들 막내 딸내미 집으로
참기름이며 들기름이며 고구마, 감자, 마늘, 고춧가루 등 바리바리 싸서 우체국 택배로 올려 보낸다
그 재미로 농사를 놓지 못해서 척추관 협착증으로 등이 굽어 기억자가 되고
밤마다 모로 누워 끙끙 앓으며 살았다

통증도 함께 늘 달고 살면 견딜만하게 된다
통증도 적응이 되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안 아픈 날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게 되는 것처럼

통증과 친구가 되면
통증과 얘기도 하고
통증을 달래기도 하고
통증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누가 눈여겨보는 이도 없으니
오히려 통증이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통증과 함께 살다가
밭 일마저 할 힘이 없어서
호미 손을 놓게 되면
별 수 없이 죽는 것이다

통증과 이별하고
통증을 못 느끼게 되면
죽을 일만 남는 것이다

그렇게
갑순 할머니는 통증이 떠나자 통증 따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