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바람의 집/김낙필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3. 15. 14:06

 

 

 

바람의 집

 


나는
저 산등성이를 넘는 바람
깃털 구름을 밀고 
저어새를 멀리 날게 하고
미루나무 끝 때까치 집에 선풍기가 되는 
그런 바람

밤마다 홀로 별을 헤고
펑펑 울어도 괜찮은 무심한 밤 
마음은 깊은 바다에 두고 
높은 하늘에 집을 짓는 바람

절벽을 오르다 
풍란초를 만나면 거기 잠깐 머물고
사시사철 은비늘처럼 퍼덕이다
스러지는 바람

내 가슴 한켠 방 하나가 비었습니다
임대료 없이 들어와 살 사람 찾습니다
바람처럼 집 지켜줄 사람 
무자비하게 채여본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삼 박사일 꼬박 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시를 좋아하고 비를 좋아하고 호박전을
잘 부치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돈 꿔달라면 딱 부러지게 거절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  
이리저리 다 뜯기고 뼈만 항상하게 남은 사람
그래도 신발까지 벗어주는 멍청한 사람
시집 한 권이면 하루 종일 잘 노는 사람 
앓아도 약도 안 먹는 사람
이런 사람 찾습니다

갱기도 괴천시 바람로 하늬바람 아파트 13동 9802호
네비에는 안 나오는 주소니 남태령 넘어 물어물어 오시길
오실 땐 노란 장미 한 송이 사 오시고
눈보라도 데려 오시고
비바람도 같이 오시고
계단 없는 집 98층, 마법의 콩나무를 타고 올라오시길 
남태령을 넘을 땐 호랑이 조심 하시고
물안개 너머 아득한 과수원길 지나
두런두런 할매들 팔각정을 지나
바람들이 모여 사는 곳 
하늬바람 아파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