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주 한잔 하실라요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4. 24. 16:50

 

 

 

소주 한잔 하실라요

 


매일 소주 두병씩 먹는다는 구십오 세 노인네는
술이 밥이고 약이다
안 먹으면 손이 떨리고 잠이 안 와서 먹어야 산다

전쟁통에 황해도에서 홀로 내려와
평생을 고향땅을 생각하며 술을 마셨다는 그 노인네는 이제

술이 고향이고 친구이고 형제였다고 말한다

술이 그를 미치지 않게 지켜줬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내게 한 위로였던 것이다
그에겐 생명수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술이 그 생명을 살린 것이고
한강 다리를 뛰어내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지켜준 것이다

이 노인네가 아파 누웠다
병원에서는 술을 못 먹으니
죽는 일만 남았다
이제 황해도 고향 땅은 죽어서나 밟을 수 있겠다

종로 2가에서
오천 원짜리 머리 깍고 이천오백 원짜리 해장국 먹고 삼천 원짜리 옷
사 입는 노인의 월수입은 천만 원 이다
모으기만 하고 쓸 줄을 몰랐던 그의 수백 억 재산은 어디로 갈까 궁금하다

길거리에 앉아 소주 한잔 하실라요?
갑자기 코 물이 나올라하네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