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처량포를 아는가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6. 26. 08:28

 

 


처량포를 아는가

 


당신은 처량포를 기억하는가
바람 부는 날 새처럼 밀려 날아온 비행기가 간신히 내려앉아서 추락을 면하고
콧물감기에 걸려 훌쩍거리며 멋쩍게 웃던 그날을

함께 죽으러 처량포에 갔다가
소주 두병에 선지 해장국으로 몸 풀고
다시 살겠다고 몸을 포개던 새벽 두 시의 열락은 오래된 방처럼 비밀로만 남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동해의 비바람 속에 우산이 뒤집어지고 등으로 걷던 길손들의 강릉 터미널은
믹스 커피처럼 섞어찌개가 되고 말았다
처량해서 고운 시절 인연이다

사람이 죽기가 힘들다는 걸 그때 알았다
죽지 못해서 코끼리와
개코원숭이와 나무늘보를 만날 수 있었다
깜깜한 밤 맹그로브 숲 반딧불이도 볼 수 있었다

처량포에서 처량 맞게 방파제를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다만 서로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게 이렇게 시간은 처량하게 늙어가고 마는구나

당신은 그 처량포를 기억하는가
가 본 적이라도 있는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