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기루의 주소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10. 2. 08:37


신기루의 주소


비 오는 산길에서 입술을 훔치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입술은 순결한 정조(貞操) 욕하고, 침 뱉고, 먹이를 씹는 더러운 그런
입구를 열고 닫고 하는 중요한 대문인데
발로 차려했으니 맞아서 싸지 싸

그 밤 쪼그려 앉아서 발톱을 깎는다
예전처럼 자세가 자유롭지가 않다
몸은 화석처럼 굳어가는데 오감은 점점 예민해져 간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잠깐 힘을 한 곳으로 모은다 던데
향기가 더욱 짙어지는 요즘 누군가가 자꾸 나를 시험하려 든다

내가 나를 부수고 달려 나가는 곳엔
늘 신기루가 있었다
무수히 속으면서도 가보는 그곳엔 새들의 고향이 있었다
돌아서면 뒤로 사라져 버리는 그곳엔 사막의 거친 바람뿐이였다

당신은 그저 있지도 없지도 않은 타인일 뿐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주소를 잘 모르는 것처럼
사람의 주소는 똑같은 한 곳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영의 신기루가 사는 곳
내가 사람처럼 살 수 없는 무명의 곳
내가 존재하지만 내가 없는 무상의 곳

새들이 말했다
당신은 신기루야 어디에서도 확연한 존재가 아니거든
너를 부수고 새처럼 날아봐 그럼 아랫것들 세상이 한눈에 보일걸
그리고 수직으로 추락하는 거야

비 오는 산길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입술을 훔치려다 뺨따귀를 맞고
홧김에 막걸리를 마시고
밤꽃 향기 맡으며 걷는 둘레길에서
나는 결국 봤지
수많은 나비들이 사막 위에서 신기루처럼 춤추는 모습을
허망하게 졸고 있는 허수아비 닮은 내 모습을ᆢ<rewrite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