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바지락 까는 여자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2. 9. 00:20



OO 시장 앞 귀퉁이에서
40년째 바지락 살을 까는 할머니는 금정에 빌딩도 한 채 있다
아들 둘은 영국 옥O퍼O 대학 유학을 마치고
대학 교수와 반도체 회사 CEO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장통에서 바지락을 까서 이룬 업적이다

바지락 살이 신선하고
낙지, 굴, 동태포가 싱싱해서 십수 년째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허리가 굽어 장사를 그만둬도 될 텐데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 아프고 병난다고
바지락 까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아침부터 커다란 대야 한통을 온종일 까면
오후 다섯 시쯤 동이 난다
그때부터는 앞집 영천댁 반찬가게 일을 도와준다
그리고 7시쯤 귀가한다
아들 둘이 시장 일을 한사코 말려도 막무가내다

바지락이 두 아들을 유학 보내줬고 안양에 집도 마련해 줬다
바지락 살을 발라내는 일은
천직이다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

남편과 사별하고 시장 귀퉁이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팔순을 흘쩍 넘겼다
결국 바지락 대야 앞에서 마지막 수명을 다 할 듯싶다

바지락이 그녀의 하나님 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