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비의 죽음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3. 6. 9. 11:00

남태령 驛舍 승강장 8-4 출입문 앞에
흰나비가 누워있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나비는 더는 날지 못하고 숨 죽인 채 누워있다
하얀 무꽃 밭에서 놀던 흰나비 같다
그런데 이 역사 안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생각났다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을 떠나 라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페루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이 흰나비의 죽음처럼
무 꽃밭이 생각나면
메밀 꽃밭도 연상되고
무리 꽃 속으로 춤추는 흰나비들이 연상적으로 떠 오른다
나비는 전철역 역사 안으로 들어 올 일이 전혀 없다
남태령 고개를 생각한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산적의 산채가 있던
이곳에 배추밭, 무밭이 있지 않았을까
나비는 아직도 그 남태령 산적들의 산채 무밭에 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 역사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나비는
산적의 어깨에 앉아
이곳까지 들어왔다가
영영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
# 남태령 고개는
영남 호남 충청지역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올 때 도성으로 가려면 꼭 넘어야 할 고개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 고개엔 산적들이 선비들의 봇짐을 털 좋은 위치였다
산채가 있었으니 식량을 키우던 무밭도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