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계란 한 판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1. 7. 15:49

동네 쇼핑센터에서
등심 한 근과 계란 한 판을 사들고 나오니
눈이 내립니다
보도가 미끄러워
조심조심 걷습니다
넘어지면 계란 한 판이 다 날아갈 판입니다
카페에 들러 '따아' 한 잔 시켜놓고
한가로이 창 밖을 내다봅니다
겨울 저녁은 스산하지만
눈이 내려 포근해 보입니다
아파트 창문에 하나둘씩 불들이 밝혀집니다
오늘에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여유를 부리는 하루였습니다
올 해의 할 일들을 새해로 미룬 것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여행에 전시회에 공연 관람에 싸돌아 다녔지만
그렇게 바쁘지만은 않은
한 해였습니다
창밖 행인들이 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립니다
예상치 못한 눈으로 거리가 비틀거립니다
눈발을 헤치고 오토바이가 달립니다
먹고사는 일이니 달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커피를 다 마셨으니
집으로 향합니다
무사히 계란 한 판을 모셔가야 합니다
제법 눈이 많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삼거리 횡단보도에 서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봅니다
눈이 얼굴을 간지려 줍니다
올 들어 세 번째 상서로운 눈입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무심히도 저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