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은등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1. 20. 08:28



우리 동네는
지은지 오래된 주공 아파트라
늬엇늬엇 저녁 으스름엔 노란 가로등이 켜집니다
베란다 창에 기대어 밖을 보면 몽환적인 풍경입니다

점점 수은등은 밝아지고
어둠은 짙게 깊어 갑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밤이면 가로등이 더욱 은은해 지지요

이제 곧 동네가 다 허물어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살구, 사과, 감나무, 모과, 자두, 대추, 능금 나무가 뿌리채 뽑여 나갈 판이지요
수십년 자란 메타쉐콰이어, 팽나무, 자귀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소나무들도 모두 잘려 버리겠지요

그리고 높다란 팬트하우스가 들어 섭니다

노란 수은등은 추억속으로사라질겁니다
트롯 가수 김연자의 '수은등' 노랫말만 나믈 겁니다
오늘 저녁
오래오래 창가에 기대어
깊어가는 수은등을 바라봅니다

라이락 향기가 일품이고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던
우리 동네는
역사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갑니다

옛 것들을 모조리 부수고
빌딩과 아파트만 열심히 짓는 우리는 우매한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