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황혼의 달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2. 13. 08:08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은 내 의지와는 달랐네
물에 떠내려가듯 살아서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잘 모르네
살아온 세월이
살아낸 세월인가도 잘 모르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축복일 뿐이네

오늘은 동물원 외각 둘레길을 걷네
눈을 밟으며 걷자니
푸드덕 장끼 한 마리 호들갑을 떠네
놀랜 가슴 누르며 천천히 걸어가네
인적 없는 길에 발자국이 새겨지고 발자국이 걸어가네

세월아 네월아 멈추지 말고 가시게
네가 닿는 곳이 어드메인지 몰라도 괜찮으리
북평 마을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으니
나는 다만 너를 잡고 가리니 어디든 떨구어 주게

강가에 앉으면 차오르는 황혼의 달
참 멀리도 왔네 하며
갈대 가지 하나 꺾어 입에 물고 노네
성근 달이 하얗게 억새꽃 닮았네

산다는 것이
희망이나 행복과 무관하다고
그것이 삶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황혼 속에 그만 길을 잃고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