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4. 28. 06:02



그럴 수는 없었죠
있었던 일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넉살 좋게 삽니다
마음이 좋으냐구요
그렇지는 못합니다

동쪽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바람막이도 못 돼준 채
해변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무섭게 밀려드는 성난 파도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네가 해풍에 행여 불편하고 힘들까 봐 불안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날 물치항 가던 바람 부는 해변 길이 제일 좋았다고 합디다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그대는 몰랐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이후로 바람 부는 동해를 자주 갑니다
거센 방파제 파도 좋아합니다
바닷새가 위태로운 날갯짓으로 물 위를 날 때가 좋습니다
테트라포드를 때리고 범람하는 하얀 포말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지는 않습니다
바람부는 날이면
그날 동해로 떠나보낸 그대가 기억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