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옹심이와 케냐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5. 20. 07:32




바람은 자고 있었다
창 밖에는 비가 오고
꽃잎들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길을 나섰다
 
옹심이를 먹으러 시장 입구로 갔다
아줌마는 감자 값이 올라서 옹심이를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문턱 감자 박스에는 감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일 인분은 만들기 귀찮은 거였다
값을 올려 받으면 될걸 궁색한 변명을 했다

갑자기 그대 생각이 났다
거친 바람, 추락하는 바다새 비틀거리는 몸을 기대준 그대의 기억이었다 
그대의 입술과 눈물과 비와 옹심이 해장국과 동해 소주ᆢ

오래전,
이제는 기억조차 말라버리고 마른바람만 부는 방파제
이제 숨결이 닿아서 마지막 이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선가 회심곡이 들려오는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기억 저 편에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었던가
심장이 잘게 잘게 부서져
모래가 된들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케냐, 너는 아느냐
마지막 남은 기억이 아프리카에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잠자던 바람이 분다
옹심이 식당 골목을 돌아 나와
케냐로 가는 길이
동해를 가는 길과 합쳐진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내 전 생애가 허공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