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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맥

생물들은 살이 다 빠지고 나면 뼈만 남는다매머드도 시조새도 공룡도 뼈만 남아서 태초의 전설을 말해 준다뼈는 그렇게 살아있다잎살이 빠지고 잎맥만 남은 나뭇잎이 아름답다나무도 한 생애를 마치고 잎맥만 남는다사람도 다를 바가 없다生의 뼈를 갈아 바람에 날려가면 민들레 홀씨와 다를 게 없다그렇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생물시간에 잎맥 표본을 만들며 신기해하며 즐거워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책사이에 끼워놓고 가을 내내 흐뭇해하던 유년시절세월이 흘러 추억의 책갈피가 됐다나뭇잎도 공룡도 사람도 잎맥만 남아 벽화가 되어 우주에 남았다오늘, 서고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책갈피에서 잎맥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生을 돌아보는 놀라운 회귀였다먼 길을 온 나도, 이제 잎맥만 남았다나의 생이여, 잎맥처럼 적묵(寂默)하기를

나의 이야기 2026.09.05

나는 말했다

나란 사람은 도대체 뭘까기우는 오후 햇살에 앉아저 먼 구름만 바라보는 사람멍하니 천청 쳐다보는 사람바람 부는 숲 넋 놓고 바라보는 사람화초 키우는 사람서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사람 목적과 목적도 없는 사람있으나 마나 한 사람학암포 해변에 앉아태어난 옛집 동네 쪽을 바라본다멀리도 와 있구나개울가 등나무는 고목이 되었고인걸은 다 사라지고 대숲만 울창하게 남아있다진달래 언덕과 안산도 자그맣게 변해버렸다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종착역은 어디인지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때가 왔나 보다그동안 무얼 위해 살았는지아직도 존재의 이유도 모른 채 무심코 살고 있다누군가가 묻는다"요즘 무슨 일 있어요"나는 말했다"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어느새 여름도 다 갔네요"라고

나의 이야기 2026.09.04

떠도는 섬

평생 방랑벽으로 섬으로 떠돌아다니던 섬시인은 섬詩로 유명해졌다그 대신 가정은 떠도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혼자 꾸려 나가야 했다 외로움이야 서로 마찬가지였겠지아들 하나 딸 하나는 크도록 데면데면해서 남의 자식들 같았다뭍은 싫어해서 섬 여인숙을 떠돌던 시인은 방랑을 끝내고 작년에 죽었다자식들은 남의 일처럼 빈소에서 곡을 하지 않았다그런 자식들은 삼식이나 아귀나 놀래미나 어떤 생선이든 싫어했고 바다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아버지를 섬 바다로 띄워 보내면서 자식은 다짐했다시 따위는 평생 읽지 않겠다고아득해지는 섬도 다닐 일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섬시인과는 남과 같았다몇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했던 아버지는 허울뿐이었다이름 모를 몇 편의 섬바다 詩가 교보문고 대형 전광판에 뜰 때면 아들은 애써 외면하고 지나갔다..

나의 이야기 20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