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303

노랑꽃

이 꽃은 아무 데나 핀다철길 옆이나들길 옆이나섬 그늘이나도시 복판에도 핀다그런데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늘 비스듬히 군락으로 핀다길 쪽으로 혹은 바다 쪽으로혹은 철길 쪽으로 기울며 핀다기운다는 것의 철학을 아는 듯싶다기운다는 것은 외롭다는 뜻이다꼿꼿하지 못하고기대고 싶은 운명 철학이다사람도 창가에 비스듬히 서 외로움을 달래고햇살도 비스듬히 빗살무늬처럼 기울어 그림자를 길게 기우는 게 특기이기도 하다금계국은 흔한 꽃이지만분위기가 있고예쁜 노랑색의 참신한 꽃이다흔하다고 업수이여기면 절대 안 된다길섶에 기우는 꽃무리를 보면가슴이 환해진다착하고 아름다운 꽃이다얼마 전 섬 여행 중에 마주친 노랑꽃이 너무 정겹고 고와서한참을 꽃과 함께 걸었었다

나의 이야기 2025.06.22

인연

살아가다 우연히 인연을 만납니 다그 인연은 억겁의 운명일지도 모릅니다그렇게 자식과도 인연을 맺고부모 형제와도 천륜의 인연을 맺습니다사랑과도 인연헤어지는 이별도 인연입니다비가 먼 산으로부터 오는 주말 오후입니다유리창에 빗물이 고입니다오늘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습니다나는 비와 대화를 합니다자연은 오랜동안 인간과 함께 해 왔습니다지구별에 온 것도한반도에 온 것도 다 신비로운 인연입니다당신과의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어린 왕자의 별도 사랑하겠습니다사람과의 緣만 인연이 아닙니다우주와의 緣도 위대한 인연입니다

나의 이야기 2025.06.21

소머리 국밥

한우 소머리 국밥은 이천이 원조다오래전 그곳에 소 잡는 곳이 있었나 보다돼지 국밥은 돼지 부속물이 재료다부산이 원조다소머리 국밥은 국물이 깔끔하고돼지 국밥은 걸쭉하다취향이 서로 다른 국밥이다소머리와 돼지머리는 백성의 먹거리 음식이다좋은 부위들은 양반들의 차지였고 그나마머리통은 천민들의 차지였다여주 가는 길 곤지암부터 소머리 국밥집이 시작된다코미디언 배연정이 국밥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이천과 여주를 오갈 때면 즐겨 먹던 국밥이다생선도 어두일미라 했고소머리와 돼지머리도 서민들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개머리나 양머리는 감히 음식으로 오르지 못했다음식점 중에 순댓국 망하는 집은 본적이 없다오히려 점점 더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소머리와 돼지 머리를 떠올리면 왠지 먹기가 안쓰럽다순하고 착한 우리 곁의 애정 어린 동물들..

나의 이야기 2025.06.20

민들레씨

민들레는 종족 번식이 강하다바람이 닿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터를 잡는다그곳이 민들레 영토다그렇게 우리나라는 곳곳이 민들레 영토가 됐다나도 민들레 씨앗이라면 좋겠다바람 따라 구름 따라 어디로든 가서 맘 놓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사람의 씨앗이란근본을 따지고 핏줄을 따지고 학력을 따지고 능력을 따지고귀천을 따지고 사는 그런 씨앗의 영토다그러니 민들레 씨가사람의 씨앗보다 훨씬 홀가분한 영혼이 아니겠는가답답한 오늘은 민들레 홀씨가 부럽다

나의 이야기 2025.06.19

당신은

당신은내게 지평선이 되고 수평선이 되어 준 사람나에게 별이 되고 달이 되어준 사람 나에게 그런 그림자 같은 사람입니다그동안 나는 당신이 준 사랑을 먹고살았습니다그러나 영원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당신이 떠난 자리가 하늘보다 커서 영영 메꿀 수가 없습니다오늘도 그리움 한 자락을 부여잡고 삽니다이젠 사랑한 기억조차도 잊혀지네요당신을 만난 건 축복이었습니다봄날보다 더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5.06.16

착한 여자

고 시인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날을 새우며 시만 쓴다결혼 후 30년 동안 아내가 벌어 시인을 봉양했다"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글만 쓰세요""제가 벌어서 먹고살 테니까 집안 걱정은 마시고요"다행히 애가 안 생겨 두 식구 먹고 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는 듯했다밤낮이 다르니 아이가 생길 턱도 없다그런 착한 여자가 이태전에 세상은 떴다대장암 말기였다의사 말로는 장이 다 녹아 문드러졌다고 말했다원인은 술이었다하루에 소주 두병씩을 매일 먹었다고 한다고시인은 아내의 술 사랑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술 먹으면 주사 없이 조용히 쓸어져 잤다고 했으니착한 여자는 속도 많이 상했으리라아무 능력 없는 남편을 평생 먹여 살리는 일이 어디 쉬웠겠는가요즘 고시인은 매일 아내가 그리워 눈물의 시를 쓴다그리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나의 이야기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