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늙은새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9. 8. 14. 08:32

 



                늙은 새

                 

                새벽 가로등이 졸고있다

                길나서는 늙은새가 하얀 입김을 내쉬며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언덕밑으로 저지대 프레미엄 아파트들의 위세가 당당하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두어시간은 지나야 할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전동차로 환승하고 한시간 남짓 가면 일터에 도착한다

                날고싶은데 어깨근육이 닳아빠져 거북처럼 기어다닌다

                딱딱한 삶이 고단하다

                현장에 도둑이 들었다

                구리 전선을 수십미터 절단해 가 버렸다

                소장은 쉬쉬하며 밤 근무자만 해고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모양이다

                남들처럼 북유럽도 가고 남태평양도 가보고 싶다

                비진도도 가보고 싶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 '타카헤'처럼 전동차를 탄다

                한강철교 하류쪽으로 해가 저물고 새무리가 내려 앉는다

                거기섞인 날개의 환영을 바라본다

                동작역을 지나면서 현충원쪽으로 새들의 묘비가

                하얗게 서있다

                다섯 정거장을 더가면 장승배기 늙은새의 둥지다

                아픈 아내와 낡은 밥상이 기다리는 곳

                파라다이스...

                누운 계단도 고단한지 말이없다

                세상의 새들이 환생한 인간들의 놀이터에는 날수없는

                날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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