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의 가을
횡단보도에 굴러가는 가로수 갈잎들이 가을이다
차들이 앞다투며 발진하는 횡단보도에 길게 누운 그림자가 가을이다
썰렁한 날씨가 목덜미를 타고 들어와 가슴까지 점령하고
갈곳 잃은 제인의 발길이 가을이다
별다를것 없이 느리게 굴러가는 오후,
거미줄처럼 헐겁게 걸려있는 삶이 단조롭고 엉성할때
밀려드는 자괴감이 가을이다
흰꽃이 피고, 노랑꽃도 피고, 보랏빛 꽃도 피는 가을이다
불자동차가 지나가고, 119가 지나간 발자국 따라 제인이 살아간다
데인 자국에 바세린을 덧바르고 메마른 입에 갈색 립스틱를
칠하고 벽화처럼 서 있는 횡단보도 건너편
담쟁이 넝쿨에게 전한다
춥다, 인생이 춥다, 밍크 이불이라도 덮어라
제인이 떠난 사거리에서 가을이 함께 죽었다
정동길 아래 덕수궁 돌담길 아래 가을 갤러리에 10호짜리
오일 캔버스에 제인이 웃고 있다
제인의 시간은 사거리에 멈춰서 있고 세상 시간만 흐른다
가을은 느닺없이 갈바람의 등을 밀어내고 구절초 언덕너머로
몸을 급히 숨긴다
먼, 낙옆과 숨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