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31

追想

영원하리라 믿었던 生이 사금파리처럼 부서져 흩어진다生은 결국 여기까지다이삿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사진 한 장이 여유롭다태국인지 라오스인지 여행 중 찍은 사진인 듯하다젊어서 빛나던 시절이다뭘 해도 아름답던 계절이다여행 전 가방을 꾸릴 때마다 허리를 다친다안전수칙을 잊고 무리하게 짐을 들고 내리다가 매번 허리를 삐끗한다오늘은 이십 년 만에 이삿짐을 싸다가 또 실수를 했다맨소래담을 바르고 파스를 붙이고 뜨거운 찜질도 한다짐짓 낼모레 이삿날 꼼짝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이다꾸리던 짐을 잠시 멈추고 앉아화려했던 그날의 사진을 보며 추상한다화양연화의 시간이 꿈결 같다'FRANKY'라고 쓰여진 저 후드티를 이번 이사하며 재활용 박스에 넣어버렸다그냥 좀 더 입을 걸 그랬나 보다

나의 이야기 2025.04.30

오늘도 청계산 쪽으로 가는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누군가 고의로 불을 내는 것처럼 요즘 산불이 잦다도대체 이 나라가 왜 이러는 걸까국민 안전 의식이 낮아서 그런 걸까일부러 누가 불을 내고 다니는 것처럼그놈의 불이 연일 끊이질 않는다불난리에 당파 싸움에 경제 파국에 나라가 무정부 상태처럼 혼란스럽다이런 판국에 대선 후보자가 십수명이라니속에서 열불이 난다이것이 火魔같은 위정자들의 실체다산에서 담배 피우는 놈은 주둥이를 빼 버리고텃밭 쓰레기 태우는 농부님들 제발 조심 좀 해 주세요자그마한 실수로 전국 산하가 불바다가 됩니다그 불난리에 죄 없는 백성과 진화 요원들만 희생당하고불탄 곳이 다시 복구되려면 수십 년에서 백 년도 걸린 답니다진화 헬기도 두대나 추락하고 누군가의 아버지 조종사도 두 분이나 순직하셨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5.04.29

나의 작은 燈

침대맡에 작은 등은 나의 희로애락을 안다수많은 밤을 함께했기 때문이다비 오는 밤눈 내리던 밤천둥 벼락이 치던 밤이 모든 계절과 밤을 함께 했다등은 홀로 웃고 울던 남자의 숱한 밤의 비밀을 안다언젠가부터 등을 돌리고 사는 사내의 삶까지애증의 세월을 함께했다오늘 등의 십 년 묵은 때를 씻기고 말갛게 말렸다앞으로 새날 새 밤을 다시 시작하자고 등을 두드리면 위로한다

나의 이야기 2025.04.28

프놈펜 1

새벽녘 프놈펜 외곽 후미진 뒷골목 허름한 호텔에서 총성이 울렸다다들 잠에서 깨어나기 이른 시각이었다호텔 2층 복도 끝방으로 현지 경찰들이 몰려들었다죽은 자의 침대 맡으로 리볼버 권총 한 자루와 사람 하나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쓸어져 있었다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였다마치 장례를 치르는 듯 말끔한 여름 정장 검정 슈트를 입고 있었다경찰 수사는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우선 식별해야 했다그러나 그 남자의 슈트 안주머니에서 한통의 유서를 발견했다자살을 증명하려는 듯한 완벽한 증거물이었다"나는 먼저 갑니다총기의 출처와 타살 흔적은 찾지 마십시오나의 독자적인 의사에 의한 죽음입니다나의 주검을 본국으로 이송하지 말고 이곳에서 재로 뿌려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그의 소지품 중 백팩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빼곡히 적어놓..

나의 이야기 2025.04.27

그 사람이 온다

그 사람이 온다바다 건너 물 건너 내게로 온다사랑이 얼마나 허망한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는지 무막하게 온다그 사람이 온다봄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 철 모르고 남풍 따라온다우리의 봄날은 벌써 저 멀리 가버렸는데무모하게 온다그 사람이 온다향일암 해돋이 본다고 삼십 년 만에 여수로 온다해는 지고 어두운데 불 밝히며온다그 사람은 무모하게 오는데금오산 자락에 진달래가 만신창이다나는 차마 어디 숨을 곳도 없다

나의 이야기 2025.04.26

발효의 시간들

홍어가 삭는 것된장 고추장이 익어가는 것김치가 익는 것사람이 익어가는 것이 모두가 발효의 시간이고 세월이다바람이 닿고 햇살이 닿는 장독대 밑으로 노란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기를 몇 번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가면 닿는 숙성의 영토고추장 된장독에 박아놓은 절인 무와 마늘쫑과 깻잎이 익는 동안 눈과 비가 수없이 내리고 폭풍이 지나갔다그와 함께 사람도 같이 익어갔다황세기젓 꼴뚜기젓 새우젓도 함께 익어갔다마치 세상에 익지 않는 것은 없다는 듯고개 숙인 벼 이삭도 삭으면 막걸리가 되고 감주(甘酒)가 되듯이 시공도 익어간다

나의 이야기 2025.04.25

사랑하기 때문에

멀리 있어도 섭섭하지 않고소식이 없어도 서운치 않고무심해도 괜찮다사랑은 무한한 신뢰다곁에 없어도 있는 것처럼구만리 먼 곳이라도 늘 가깝다사랑은 늘 주고 나서도 또 모자라고주고 나서도 늘 허기롭다그래서 머릿속에 있고 가슴에 있고 눈 안에 산다그렇게 살다가 죽는 순간에다시 보고 싶어 가슴 졸이는어리석은 사랑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아무도 모른다나만 안다

나의 이야기 2025.04.24

샬롬!

"하바나 가는 길"이란 내 자작글에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샬롬! 글씨와 그 내용이 맛갈스럽네요. 옛 추억을 불러내는 마술사 같은 당신 누구?"나는 답했습니다"나는 지구별 여행자"그러자 친구가 답글을 다시 달았습니다"지구에는 슬픈 일이 많으니 머리 식힐 겸 이름 모를 어떤 조용한 행성에나 함께 한번 다녀오십시다!날 잡으세요!"나는 답글을 달았습니다"치앙마이, 라이 가고 싶다날 잡아봐라"나의 글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친구가 나처럼 글을 써보고 싶어서 문화센터 시창작반에 등록을 했다고 한다잘했다고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그는 늘 내 글이 맛깔스럽다며 무한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다그래서 나는 그 힘으로 오늘도詩를 짓는다

나의 이야기 2025.04.23

강물처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건네는 말 한마디가 오늘을 살고 다시 내일을 살게 한다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붐비는 전철과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저녁따듯한 위로 한 마디가 또 다른 하루를 살게 한다산다는 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고가끔은 웃고가끔 하늘을 보며그렇게 살아가자구요오늘은 꽃비가 내립니다

나의 이야기 2025.04.22

봄날 9

어제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어요귀가 중에 비바람으로 정강이까지 젖어 추웠어요대청봉에는 눈까지 내렸대요명자꽃까지 봄꽃이란 꽃은 다 피었는데눈꽃도 함께 피었답니다"빈 필하모닉 다스 콰르텟"봄비 내리는 주말 저녁 음악회를 다녀왔습니다환상의 연주환상의 무대아름다운 하모니였어요오랜만에 귀호강 하고 밤비 맞으며 돌아왔습니다마음이 풍요로웠어요ᆢ천변에 풀들이 다 돋아 났다청둥오리 어미가 새끼오리들은 데리고 물가로 나왔다일곱 마리가 몰려다니며 물 위에서 종종걸음을 친다새 생명들이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 봄이다나도 봄이다보는 것마다 싱그럽고 여유롭다어디선가 불어와 코 끝에 머무는 라일락 향기가 너무 좋다골목마다 돌아다니던 그 향기차고 넘치지 않는 봄날이다촉촉하게 봄비도 내려서 포근한나그네의 생도 이 봄날과 같았으면 좋겠..

나의 이야기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