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리2
싱글맘은 전쟁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애를 키우는 일이 둘이서도 힘든데 혼자 키우자니 친정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턱도 없다
태준샘을 만난지도 반년은 넘었지 싶다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삶이다 보니 시간 내기가 좀처럼 수월치가 않다
샘도 작품 때문에 음성 어딘가로 작업실을 옮겨 앉았기 때문에 시내쪽으로 발길이 잦을수가 없는 형편 이었다
그립고 보고 싶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 하면서 창밖 감나무에 청설모가 분주하다
감잎은 어느새 다 떨어지고 새빨간 연시만 풍성하게 달려있다
홍시가 까치밥이 아니고 이 녀석이 몽땅 차지해 놓고 늦은 계절내내 배터지게 먹고가곤 한다
아마 공원쪽에서 사는 녀석이 여기까지 출장오는 모양이다
아파트뒷편 외진 공간이라 주민들도 욕심내어 따가려 하지도 않는다
검은가지에 빨간 감들이 무서리에 스스로 몸을 익혀가는 중이다
오늘은 초설이 내렸다
사무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테헤란로는 검고 어두워 을씨년 스러웠다
이해도 이제 보름 남짓이면 밀려나고 다른 해가 올 것이다
내 직장도 중국 제품에 밀려 점점 사업이 축소 되어가기 때문에 언제 자리를 내주고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요즘 일하기가 편치 않다
친구들도 요즘은 뜸하더니 연희에게서 망년회 하자고 전화가 왔다
연희가 들뜬 목소리로 말해왔다
유리야 "연희에게"란 영화가 나왔다는데 네티즌들 감상평이 좋던데 보러갈래?
그래? 그럼 수연이도 불러 같이
가야지
그럼 8시 마지막 상영이니까 낼 7시에 충무로 역에서 만나서 같이
가자 수연이에게는 내가 연락 넣을께
연희는 아직 결혼을 안하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산다
워낙 능력도 있고 사업 수완도 좋으니 동종 업계에서 이미 돈 많기로 소문났다
그러다 보니 그럴싸한 사내놈들이 눈이 벌개가지고 달려 들지만 거기에 현혹될 아이가 아니다
혼구멍만 나고 떨어져나간 사내들이 한둘이 아니다
연애는 순하고 평범한 남자들과 하고 싶을때 언제든 하고 산다고 했다
자유 분방한것 같지만 나름대로 철저한 규칙과 룰속에서 도과 선을 넘지 않는게 무사고의 원인이다
그래서 주위에 여자 친구보다 오히려 남자 친구들이 많다
영특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친구다
수연은 제일먼저 시집가서 아이가 둘이다 벌써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돈많은 준재벌 셋째와 결혼 했는데
신랑이 천둥 벌거숭이다
금수저로 자라서 자생능력이 없다
사고만 치고 일해본적이 없어서 시집에서 주는 생활비로 산다
그 생활비라는게 내 봉급의 5배도 넘는다
그러니 수연은 애들 뒷바라지하는 재미로 살고 있단다
나는 이미 한번 갔다온 처지로 내가 벌어야 딸아이 하나를 건사해 나갈수 있는 처지다
암껏도 모르고 불타는 사랑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 했지만 현실은 채 삼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단이 났다
남편의 잦은 외유와 바깥 살림이 이유였다
우린 전공은 다르지만 고교시절 죽고 못사는 단짝이었으므로 늙어 죽을때까지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연희는 내 처지를 잘 알고 있어서
늘 안타까워 했다
물론 도움을 주려해도 내가 절대 사절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딸래미 대학 공부는 연희가 시키겠다고 다짐을 해논 상태다
마음만으로도 고마운 친구다
태준샘은 내게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나를 멀리 한다
내가 이혼한 것도 본인에게 얼마간의 책임이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말 안해도 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나만의 사정이었고 내가 감수해야할 몫이었다는걸 내가 인정했던 일이다
내 마음이 떠난것을 애 아빠한테 들키기전에 미리 선수친 내가 잘못이 크고 내 죄가 많다는 것을
내가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외롭고 험한 길을 택했다
언젠가 무모한 사랑의 감정이 식으면 후회할지라도 내 감정에 충실하기로 하고 택한 결정 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사기꾼의 기질을 닮아서 언제 어떻게 변할줄 알길이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 순탄할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불구덩이로 뛰어든 내가 얼마나 미련한 인간인지 나 자신도 인정하고 있으니 후회는 안하기로 다짐했다
퇴근길이 싸늘해서 포장마차에서 따듯한 오뎅국물에 소주한잔 하고 싶었지만 날 기다리는 딸애를 위해서 서둘러 집으로 간다
벌써 신세계앞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 밤이다
명동쪽으로 젊은이들의 열기가 쏟아져 들어가는 불금의 저녁이다
그리워도 그립다는 말도 못하는 내가 처량하다
태준샘이 보고 싶다
우리가 잘못한건 없어요
사람들이 뭐라하는건 우릴 잘 모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게 죄라면 세상은 사랑이라는게 존재하면 안돼죠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
사랑이 왔을때 등을 돌리지 않겠어요 있는 힘껏 안겠어요
죽도록 사랑하다 죽으렵니다
선생님 온힘을 다해 사랑합니다
영혼없는 말에 속지마라
음악이 흐를때 진실의 눈을보라
심연의 고통을 슬퍼마라
우리는 속고 속이는 간사한 동물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죽도록 사랑하다 죽어라
후회를 남기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카뮤'에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들이 뜬다
'음성'에 가면 눈이 내릴까
나에게도 방울소리 내는 당나귀의 따듯한 등을 빌릴수 있을까
그렇게 이 겨울 사랑하는 이의 움막에 다다를수 있을까
나의 품은 차가워도 심장은 뜨거울진대
그대의 가슴을 데울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유리는 쓸쓸한 저녁을 걸어 아이에게로 간다
아파트로 가는길 노란 가로등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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