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느 날 내게 편지가 왔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11. 18. 20:29

 

 

 


어느 날 내게 편지가 왔다

 

 


선생님ᆢ
세월이 참 무심히 도 흘렀네요
창이 공항에서 뵌 후 꼭 7년이 지나갔네요
헤어져 돌아온 후 바쁘게 살았습니다
한국어 강의, 박물관 운영, 시 창작 공부를 하느라 허둥 대다가 눈 깜빡할사이 이렇게 시간이 가 버렸습니다
이제 저도 올해 환갑을 맞습니다
요즘에야 환갑 진갑 나이에도 애들 취급한다니까
참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샘 께서는 어디 편찮으신데 없이 강녕 하신지요
저는 늘 샘을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지난달엔 뉴욕에서 공부하던 딸내미가 귀국해 한 달간 모녀의 정을 나누고 갔답니다
하나뿐인 피붙이라 너무 짠하고 고맙고 대견해서 많이 울었답니다
선생님 말씀도 딸에게 전 했지요
늦게 사귄 남친 이라고요
그런데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어서 선생님 블로그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여 줬지요
참 좋으신 분 같다고 좋아했어요

어제는 이곳에 눈이 많이 내려서 집 앞을 치우느라 반나절을 보냈나 봐요
이곳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서 내내 눈 속에 파묻혀 지내지요
관광객은 좋으시겠지만 주민들은 얼른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답니다

집안에 난로를 켜놓고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있으면 천국 같아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요즘 새로 시작한 아크릴 그림도 그린 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새롭고 환희로워서 행복합니다

샘, 뵙고 싶은데 이곳에 한번 다녀가시면 안 될까요
제가 선생님께 가 뵈는 게 도리인 줄은 알지만
제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먼길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전문의 말로는 완치가 어렵다네요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가 어려워 생략하렵니다

샘께서는 건강 잘 챙기셔서 저 처럼 아프지 말았으면 합니다
뵙고 싶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뜬금없이 이렇게 서신으로나마
소식 띄우게 돼서 무례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운 샘,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비옵니다

2025년 10월 17일
정희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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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국제우편으로 편지가 왔다
나는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이다.
창이 공항이 어딘지도 모르고 정희주란 사람도 모른다.
상대방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던지 아니면

수취인 주소가 잘못되어 내게 편지가 도착됐는지도 모른다
개봉은 했지만 메모와 함께 정중히 반송하기로 했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많이 아프신 모양인데 빨리 회복하고

쾌차하길 맘속으로 기원한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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