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 남자의 방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2. 10. 23. 00:02



그 오래된 방은
엔틱 탁자와 양가죽 소파와
너른 양탄자가 깔려있다
월풀 스파 욕조가 반짝이는 욕실은 내 안방보다 더 크다
최고급 와인과
강이 흐르는 전망이 나를 나른하게 한다

부르면 달려가는 마성의 방은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열락의 계단처럼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는 방
첨탑 꼭대기 같다
비 오는 날은 빗줄기 속에 젖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속에 흔들린다

내 땀 냄새를 좋아하는 그는 어린 남자다
세상은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나는 본능에만 충실한
불량한 여자다

그 남자는 내 배를 타고 한 시간 동안 노를 저었다
그가
값 비싼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주며 말했다
사랑해ᆢ
가벼운 거짓말에 오늘도 나는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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