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림자 놀이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4. 8. 4. 00:17



기울어진 그림자 끝을 밟아 봅니다
스펀지 같기도 하고
벼랑 위 딱딱한 바위 같기도 합니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 때면 지난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베란다로 길게 누운 볕의 죽음을  보면서 뜰악의 붉은 칸나의 정염을 부러워합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어둠이 아니라 침묵입니다
겨울 같은 적막입니다
묵주 반지에 박힌 빨간 보석은 사파이어입니다
잉어와 연꽃이 새겨진 반지는 인연입니다
모든 게 말 문을 닫고 있습니다
오늘도 깨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영혼은 아무도 아닙니다
먼 전설 속 천년의 약속이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새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저편 산기슭 호숫가에 파문이 일고
사람들의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그림자밟기 놀이를 합니다
밟아도 밟아도 도망가는 그림자
해가 지자 그림자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해가 지자
나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그림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대의 등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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