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엘리스의 산티아고 가는 길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7. 4. 20. 15:17

 



                  엘리스의 산티아고 가는 길

                   



                  그림 그리는 일이 소원해 졌다

                  미술 도구를 다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예전같지 않다

                  이즈음엔 그 분도 잘 찾아주질 않으신다

                  강의 나가는 일도 심드렁해 진다

                  슬슬 꽤도나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TV앞에 앉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엉치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 진다

                  일도 놓고 창작 작업마져도 게을러지면

                  이젠 정말 할 일이 없다

                  물오른 창밖의 단풍나무 가지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앉아있다

                  잔뜩 흐린 하늘아래 아파트 지붕이 침울하다

                  서둘러 핀 꽃들이 지고 영산홍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목하 봄이 깊어가는 중이다

                  내가 늙어가는 중이다

                  TV 영화 혼자 열심히 뭐라고들 떠들어대고 있다

                  개 짓는 소리도 들리고 울음소리도 들린다

                  나는 여전히 창밖의 나무들을 쳐다보고 있다

                  전화가 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담당의사 소견을 들으러

                  병원으로 나오라는 간호사의 전갈이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한다

                  TV는 여전히 혼자 열심히 대화중이다

                  병원 들러 문화센터 뒷동산 가죽나무에 나물순이

                  올라왔나 보러가야 겠다

                  그리고 영화 한편 보러가야 겠다

                  나의 사랑, 그리스...

                  엘리스의 산티아고 가는 여정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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