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 소설
그 소설은 무겁게 출발했다
화재가 나고 병원에서 탈출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뭐 이래 재미없게
쓰는 사람의 의식이 너무 뚜렸하면 넋두리가 된다는걸
모를리 없을텐데 작가는 자신의 오류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품 한바가지를 쏟아내고 책두껑을 닫아 버렸다
비린내 나는 것들에게 비웃음을 던지고 나는
이불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내 방이 무한한 우주라는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 비린내 나는 강을 유유히 오르는 잉어떼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생은 때도없이 앙탈부리는 시기를 거쳐서 흘러간다
상처입고 좌절하고 새 살이 돋으면서 불혹을 넘어간다
소설이 중반에 이르러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눈밭 계곡으로 떨어져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
위대한 자연속으로 스며들고 싶어질때 철이 난 걸까
생이 비리다는걸 아는 이가 있을까
그런 사람과 종일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덮는다
팔리지 않고 울기만할 책
억만금을 줘도 못 잡는게 세월이라든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그렇게 병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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