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린 소설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18. 12. 13. 22:16

 




                비린 소설

                 


                그 소설은 무겁게 출발했다

                화재가 나고 병원에서 탈출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뭐 이래 재미없게

                쓰는 사람의 의식이 너무 뚜렸하면 넋두리가 된다는걸

                모를리 없을텐데 작가는 자신의 오류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품 한바가지를 쏟아내고 책두껑을 닫아 버렸다

                비린내 나는 것들에게 비웃음을 던지고 나는

                이불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내 방이 무한한 우주라는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 비린내 나는 강을 유유히 오르는 잉어떼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생은 때도없이 앙탈부리는 시기를 거쳐서 흘러간다

                상처입고 좌절하고 새 살이 돋으면서 불혹을 넘어간다

                소설이 중반에 이르러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눈밭 계곡으로 떨어져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

                위대한 자연속으로 스며들고 싶어질때 철이 난 걸까

                생이 비리다는걸 아는 이가 있을까

                그런 사람과 종일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덮는다

                팔리지 않고 울기만할 책

                억만금을 줘도 못 잡는게 세월이라든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그렇게 병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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