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먼 섬
폭설이 내리던 날
수연이 나고야 집을 찾았을때
엄마와 시완 아저씨가 나란히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벽난로가 적당히 익어서 실내는 훈훈하고 따스했다
내가 들어서자 두분이 동시에 몸을 돌려 나를 보고 웃으며 반겼다
엄마는 시완 아저씨를 아빠처럼 대하라고 하셨다
내가 아빠의 사랑을 받은적이 없기 때문에 엄마는 늘 내게
미안해하며 살아오셨다
그러기전에 이미 아저씨와 나는 깊은 우정과 신뢰를 쌓고 있었기에
전혀 남 같지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한가족처럼 지낸지 이미 오래 됐으니까
우리는 남다른 사이가 아니다
혹시 동네 사람들이나 남들이 보면 주말에나 들리는 이 집이
나혼자 사는 집으로 오해 하겠지만
집안에는 언제나 이렇게 엄마와 나 시완 아저씨가 함께 산다
오늘은 지난번 들렀을때 약속했던 박속 낙지탕을 끓여 먹기로 했다
지난 늦여름 거둬 냉동해둔 박속과 어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낙지와 바지락을 조리대에 펼쳐놨다
우선 바지락과 다시마와 양파를 넣고 육수를 끓였다
건데기는 건져내고 우려낸 육수에 나박 나박하게 썬 박속과
저민 무를 넣고 일단 한소큼 끓였다
적당히 끓어 올랐을때 불을 줄이고 어슷하게 썰어논 대파와
청양고추와 손질한 낙지를 넣고 이삼분 정도만 더 끓여내면 된다
오래 끓이면 낙지가 질겨진다
칼칼하고 담백한 박속 낙지탕이 드디어 완성된다
우리 식구는 눈 내리는 창밖과 베치카옆 주말식탁에 서로 마주보며
앉아 특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된다
이곳이 지상낙원 천국이다
"엄마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가세요?"
"응ᆢ 북유럽ᆢ보름정도 걸릴거야"
"이번에는 시완 아저씨가 일정을 다 짜기로 했단다"
"나는 그냥 따라 가기만하면 돼ᆢ"
"두분은 좋겠다 늘 자유로워서ᆢ"
"그래? 너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살다가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땐 우리와 함께 다닐수 있으니까
걱정 말으렴"
우린 약속했다 늘 함께 여행 다니기로...
남은 박속 낙지탕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고 끓였다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너무 칼칼하고 시원하고 맛있다
수연은 이렇게 주말을 나고야 집에서 보낸다
그리고 도쿄로 돌아갈땐 문단속도 잘해놓고 오븐, 렌지도
잘 껏는지 단단히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엄마,아빠 다음주에 뵈요ᆢ"
안녕...
송광사 뒷뜰을 걷다 만난 사람
징검다리 건널때 뒷모습 바라보던
사람
모두 전생의 인연이라 송광사에서 만났네
억겁 인연은 부처님의 손바닥 안이지만 미물이다보니
환하게 웃었네
스님 한분 내려 가시네
보살 한분 올라 오시네
송광사 뜰악에 봄손님 가을손님 오르내리고 세월도
함께 흐르고 내리네
환생한 삽살개 너는 어느골에 누구였드냐
부처의 자비에 송광사 스님의 반려가 되었으니
큰 은덕이 아니더냐
나야 송광사 스쳐가는 여느 바람이려니 아무것도
아니다
뒷뜰 퉷마루에 앉아 글 한자락 놓고가니 부디
불쏘시게로 쓰시게나
송광사야 성불하시게
나는 무저갱 벼랑 아래로아래로 내려가네
하얀 구절초 언덕에서 아미타불 정토를 보네ᆢ
<다음편이 마지막 16부작 "나고야 여자" 전편이 완결 됩니다 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