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류장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0. 8. 2. 08:02

정류장

비가 온다
거리는 비에 젖어 어둠 속에 온통 반짝거리고
늦은 밤 정류장에 사내 하나가 앉아있다
습한 비바람이 불어오는 시각
오고 가는 인적이 드물다

장마가 시작되면 통영에 가야지ᆢ
누군가를 찾아가는 발길은 사뭇 설레기만 하고
바다가 보이는 그 언덕배기 민박집엔 아직도
먼 발자취가 남아 있을까
들고나는 고깃배들이 물보라를 남기고 물새들이 그득한
포구에는 아직 비린내가 가득할까

바람이 거세지는 걸 보니 곧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정류장 의자가 안온해지는 까닭은 거친 빗줄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잠실, 충훈부, 양재, 신사사거리, 군포가
사정거리인 KT 과천지사 역 정류장 의자에 홀로 앉아있다
일어서야지 다짐하지만 세찬 비바람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여름 한복판 무더위도 장맛비에 허리를 접고
수그러 들어 살만하다
속초 가는 버스를 잡을까
영종도 가는 공항철도를 타 볼까
을왕리 깜보네 집이나 가볼까
나고야 가는 비행기를 타볼까
별별 실없는 생각을 해보며
정류장에 앉아있다
비바람이 시원해서 좋다

건너편 '베스톤 비뇨기과' 앞 정류장에도 머리를
한껏 구부린 남정네 하나가 졸고 있다
어쩌다 갈 길을 잃었는가
풍경이 드라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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