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자
폭설이 온 세상을 뒤덮던 날
공원 벤치에 노란 우산을 쓴 노숙자 하나가 삼립 크림빵을
입에 물고 있다
늦은 점심 식사인 듯하다
추위로 뻑뻑한 질감의 빵을 씹는 그에게 방금 슈퍼에서 산
뜨거운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앉은키에서 흘낏 위를 쳐다본 후 아무 말 없이 받아 들고
천천히 입을 대고 마신다
목화솜 같은 눈은 점점 더 펑펑 내린다
솜이불 같은 질감이라 나는 눈의 포근함을 느끼지만 이 사람도 눈이
나처럼 포근할까
여름 내내, 가을 내내, 공원 벤치에서 누워 잠도 자고
해바라기도 하고 끼니도 해결하던 늘 보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왜 우리 동네를 주 무대로 택했을까
본래 검은 옷인지 때가 타서 검은 건지 가방도 검고 얼굴도 검고
단발머리도 검고 눈동자도 검다
서너 해가 지난 세월이지만 똑같은 복장 똑같은 모양새로
중앙공원 도서관 가는 길가 가운데쯤 벤치에 앉아 있다
행색을 가늠하면 오십 초반쯤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어디 식당 주방 설거지라도 나가지 종일 공원에 앉아 해바라기만 하는
사연은 뭘까
여러 해가 지났다
더 추워지면 이제 겨울잠 자러 어디론가 가겠지ᆢ
오늘은 눈 오는 날
기상 예보에는 한계령에 일 미터 넘는 눈이 쌓인다고 예보했다
모처럼 용대리 황태덕장에도 눈보라가 치겠지
눈발에 가무룩한 황태들의 덜그럭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핸가 폭설이 덮여 용대리에 차를 두고 온 적이 있었다
눈이 멎은 후 차를 찾으러 갔을 때 길가에 세워둔 긴 행렬의 차는
눈 속에 파묻혀 간 곳이 없었다
검은 여자도 노란 우산도 눈에 덮여 사라지는 날
차를 찾으러 가듯 용대리 폭설을 맞으러 백담계곡을 가봐야겠다
눈보라 덕장이 보고 싶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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