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貪姬

시인화가 김낙필/자작나무숲 2021. 2. 21. 13:13

 

 


貪姬

 


아빠, 아기를 낳으려고 해요
어떻게 아빠 없이 혼자 키울 거냐고 걱정하지만
애는 우유만 잘 주면 나무처럼 쑥쑥 클 거니까
걱정 없어요
방목할 거니까 과외비도 필요 없고 학원비도
필요 없어요
그냥 들고양이처럼 키울 거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나중에 뭐 될 거냐고요?
글쎄, 그거야 세월 가봐야 알죠
도둑년이 될지
유명 스타가 될지 그건 그 아이 팔자소관이니까
아직은 어찌 될지 모르죠

애는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예요
제 밥을 반씩 나눠 먹으면 되고요
혼자보다 둘이면 덜 적적 하니까 좋찮아요
애 낳을 동안만 아빠 집에 있을게요
그동안의 생활비는 나중에 돈 벌어 갚을 테니 봐주세요
저도 대학 같은 건 포기하고
돈 벌겠어요
돈 벌면 애와 함께 지구촌 곳곳 여행 다니며 살겠어요
애도 날 닮으면 야생마처럼 자유로울 거예요

아이 아빠는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알면 오히려 부담이 되니까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그러니 애 주민등록에 제 패밀리 네임 '鄭'씨를 주기로 했어요
아빠, 절 믿고 맡겨 주세요
애는 잘 키울게요
아빠에게는 자랑스러운 손녀가 될 거네요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애는 건강하다네요
이젠 배가 불러와 학교는 자퇴해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많이 도와주세요
애는 낳으면 내가 19세 되는 날
출생 신고할 거예요
아직은 성년이 아니니까
일 년 정도 참으면 되겠네요

손녀 이름은 아빠가 꼭 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내 이름을 지어 주셨던 거처럼요
제가 늘 전교에서 일등 하던 것처럼 일등 엄마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켜 봐 주세요
아이와 나 모두 성공할게요
같이 행복할게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는 아이 이름을 '탐희'라고 지어 주셨다
탐낼貪 계집姬ᆢ

탐희는 어느새 숙녀가 됐고
NY대에서 장학생으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후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UN 산하 기구에서 국제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毒을 먹으며 산다  (0) 2021.02.24
바람처럼  (0) 2021.02.22
정류장  (0) 2021.02.20
이별  (0) 2021.02.19
저녁 비의 색깔  (0)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