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거짓말
우리는 서로를 사이좋게 속이며 달콤하게 말하죠
잘 익은 살구처럼 농염하게
웃으면서
우린 진부한 진실을 원하지 않아요
달콤한 거짓말을 오히려 더 선호하죠
그리고 빈약한 진실보다 허위의 위대함에 환호합니다
역사 계단 앞에서
하루 종일 더덕 껍질을 까는
산본천로 2179-52 지층 2호
꼬부랑 할머니는
아들 아파트 청약 때문에 안양 집으로 간다고 짐 싸더니
이 더위에 도로 돌아와 앉아계시네요
혼자 사는 게 편하신 게야
과천 중앙공원 세 번째 벤치를 독점하신 노숙자 여사님은 무더위에
단벌 옷 벗지도 못하고
달랑 부채 하나로 폭염과 싸우며 앉아계시네
어디 계곡으로 잠시 피신하지 않고 한결 같이 자리를 지키시는데
우리 다 같이 죽음의 잔을 들어요
망각하지 않으면 못 살듯
서로를 달콤하게 속이며 살아요
세상을 배회하는 유랑자처럼
허위롭게 살아요
마치 서로에게 영원히 속아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안아주면서
우리의 실루엣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아요
그러니 맘껏 속을 수 있어요
사공은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애꾸눈 선장의 해적선을 탑니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손을 호호 불며 호롱불을 켤까요
우리를 묶어둘 세상은 어디에도 없어요
표류하는 전마선처럼 떠다니는 거니까
달항아리 계곡에 떠있는 반달처럼 영롱하기를 바래요
아득한 지상의 빛을 사랑하기로 해요
어린 왕자가, 인어공주가 사랑한 세상에서 우리 만나기로 하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서로를 속이면 살자고요
그러다 보면 세상은 온통 허위로 도배된
가면 무도회장이 될 거예요
우린 진실한 거짓말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