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L 특송편으로 우편물이 도착했다 발신지는 스위스 바젤 ‘엑시트 인터내셔널’이란 단체에서 보낸 문서였다
[귀하의 부친께서 현지 병원에서 사망하시어 화장후 분골 처리 하였으니 망자의 납골함과 함께 30일내 유품을 수령해 가시기 바랍니다<영문 해석>]
아버지가 친구분과 함께 스위스로 여행가신지 2 주만에 날아든 비보였다 자초지정을 물을 새도 없이 여행사에 스위스행 티켓을 예매했다 출발은 3 일 후로 잡았다
다음날 아버지의 절친이자 이번 여행에 동반자인 광수 아저씨의 큰딸 은경씨 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와 똑같은 사망 비보를 받았다는 것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예감이 뇌리에 스쳤다 사전에 면밀히 계획된 동반 자살의 유형임을 직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은형씨도 동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같은 일정의 항공편을 예약하기로 했다
알아본 바로 스위스에서 인정하는 존엄사의 비용은 일인당 이 만불선이라고 들었다 두사람 분의 4 만불 안팎 비용 전부를 지불한 이는 아버지였다 친구분은 형편상 지불 능력이 없었을 것이므로 아버지가 친구분을 꼬셔서 같이 동행하셨을 것으로 추측 되었다 이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사망 유희였다
조작된 국내 모 대학병원 전문의의 말기 췌장암 진단서와 소견서는 물론 돈으로 만든 블로커의 조작된 거짓 문서임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바르비투르산염' 진정제를 처방 투여 후 안락사를 실시한 엘링턴 종합병원도 페퍼 컴퍼니 같은 종류의 허위 병원인 듯 싶었다
고인의 위품 수령 절차는 간단했다 헬링턴 병원의 총괄과에서 수령한 망자의 납골함과 유서 형태의 자필 편지와 간단한 소지품이 들어있는 여행가방이 전부였다 친구 아저씨도 마찬가지 였다 수령확인서에 은영씨와 나는 각각 보호자의 서명을 했다
호텔로 돌아와 나는 아버지의 유서라는 편지를 개봉하여 읽기 시작했다 편지는 두 편 이었다
<아들에게> 나는 못해본 것, 안 해본 것 없이 인생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았다 그래서 남은 生에 대해서는 손톱 만큼도 여한이 없다 그러니 나 죽거든 슬퍼 마라 이만큼 산 것도 축복이니 절대 서러울 일 아니다 묘비도 필요없고 봉분도 필요없다 그냥 훌훌 태워서 '다불리' 개망초언덕 바람부는 쪽으로 뿌려다오